[창간 15주년 기획특집]‘사인검(四寅劍)’을 통해 헤리티지를 이어 가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사인검(四寅劍)’을 통해 헤리티지를 이어 가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0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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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과 ‘문화수도 전주’가 맞손 잡으면- ⑵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 한상봉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 한상봉.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 한상봉.

◇왕의 칼, 조선의 사인검을 아시나요?

조선왕조의 문을 연 태조 이성계는 조선 왕실의 통치이념을 사인검(四寅劒)을 통해 구현했다. 왕실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 가정의 화목을 바라는 마음을 사인검에 담은 것이다. 사인검은 고구려 때부터 내려온 천문 과학과 불교, 도교, 성리학, 풍수지리, 주역 등 음양오행과 결합된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맞추어 맞춤 제작을 함으로써 우주의 기운이 깃든 ‘왕의 칼’이다.

1398년 처음 만들어진 사인검은 조선왕조의 사상적 논리와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한 왕실의 통치이념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철학과 공예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사인검 한 면에 새겨진 검결 27자는 주역의 8괘를 설명하고 있다. 온갖 삿된 것들을 물리치고 하늘의 양기로 이 세상을 올바르게 하자는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별자리 28수는 천상의 기운을 내려받아 삿된 것들을 쫓는 데 가장 효험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한·중·일 동양 삼국에서는 예로부터 별자리(星文)에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 천문도를 읽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별자리를 읽는다는 것인데, 이는 각별에 깃든 신(神)의 힘이 지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문화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인검 검두에 새겨진 별자리와 부적.
사인검 검두에 새겨진 별자리와 부적.

 

사인검에 별자리를 담았다는 것은 임금이 하늘을 읽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임금은 하늘을 읽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했고, 천문과 역법에 정통했다. 별자리를 통한 통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며, 결국 제왕학으로 자리 잡았고, 천체 관측과 역계산 등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 농사와 재해에 대비토록 했다. 특히, 조선의 임금 중에서도 세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종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애민사상이 강하여 왕만 알아야 하는 하늘의 비밀을 백성에게 공개했다. 세종은 하늘의 비밀을 백성과 공유함과 더불어 우리 글과 우리 소리, 우리 음악을 통해 문화국가를 만들었고, 혼천의 앙부일구를 통해 과학국가까지 만들어냈다. 세종의 업적들인 농사직설, 앙부일구, 밤의 시계인 혼천의와 훈민정음, 신기전 등은 태조의 사인검에 나타난 별자리 정신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15세기 최고의 문화국가이며 과학국가였던 조선을 대표하는 성물이다.

이러한 사인검은 천문 과학, 우주의 기운을 빌어 삿된 것을 막아내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동양 삼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글로벌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조선 왕실의 철학을 간직한 사인검이야말로 오백 년 조선의 대표적 헤리티지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사인검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인참사검.
국립중앙박물관 사인참사검.

◇사라진 ‘사인검’이 다시 나타나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유명무실해진 사인검이 자취를 감춘 지 150여 년,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인 낙죽장도장 한상봉이 부친 한병문으로부터 낙죽장도 공예 기술을 전수받아 전설처럼 내려오던 신비의 사인검을 2010년 복원하여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경기도 양주 대모산성 죽간이 최초의 낙죽으로 밝혀졌다. 낙죽장도는 대나무의 절개를 담은, 부드러우면서도 약하지 않고 강하면서도 유연한 칼이자 문무의 조화를 이루는 선비의 칼이다.

낙죽장도의 특징은 손잡이와 칼집을 일곱 마디 이상의 단단한 대나무를 사용하고 거기에 고전에 등장하는 시나 성현들의 가르침을 새겨넣는다. 불에 달군 인두로 대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것을 낙죽(烙竹)이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도는 장인이 만들지만, 낙죽장도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선비가 직접 만드는 공예품이다. 성리학의 근간인 조선 선비 간에 비전으로 전해져 오던 낙죽장도의 공예 기술을 대대로 계승 발전시킨 가문이 한상봉 가문이다. 한상봉은 더 나아가 조선왕조 통치이념을 구현하고 벽사의 상징이던 ‘왕의 칼’ 사인검을 온 국민의 미각을 즐겁게 할 주방용 칼로 제작하기 위해 ㈜온고와 KIST 연구진과 함께 협업 중이다.

울산 쇠부리축제 고대 원형로 복원 실험. 사진제공=울산 북구청
울산 쇠부리축제 고대 원형로 복원 실험. 사진제공=울산 북구청

◇울산 달천은 우리나라 제철 강국의 원조

신라가 울산 달천 야철지, 경주 녹동리 야철지 등을 이용한 제철 강국이었음을 여러 개의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부터 채광이 이루어졌고, 남쪽 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달천 광산에서 나오는 철들은 비소가 발견되는데 괴련철이나 선철에도 포함되어있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철 유물에서도 비소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달천의 철광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음을 입증한다. 울산 달천 철광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천 광산이며, 1970년대에 울산 달천에서 생산한 철은 포항제철에 납품되었다.

단조와 접쇠는 전 세계 공통의 제련법으로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등이 제련의 선진 기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울산 달천 광산과 6세기경 합천 가야 다락국의 제철 기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용봉 장식 고리자루큰칼. (합천 박물관 소장)
용봉 장식 고리자루큰칼. (합천 박물관 소장)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제철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철 유전이라는 국영 공장을 운영했고 생산을 국가가 통제했다. 고구려는 중국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막강한 무기들로 전쟁에서 승리했다. 평안북도 풍전리, 황해도 등지에서 ‘쇠부리터’라는 제철 유적이 다수 발견됐다.

백제 근초고왕 때에는 일본에서 온 사신에게 철정 40개 등 여러 가지 선물을 줬다. 그리고 백제 왕세자는 왜왕 지(旨)를 위해 백년강으로 만든 칠지도를 선물했다. 칠지도는 195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되어있다. 칠지도를 만든 백련강은 괴련철을 목탄로에 넣어 가열시키며 침탄이 일어나도록 함과 동시에 철편을 두드리고 접는 과정을 수없이 많이 반복한 강철과 유사한 특성의 단철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당의 세력을 쫓아냈다. 삼국을 통일한 힘의 원천에는 달천 광산의 철 제련기술과 무기 제작의 단조가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 연맹의 제철 가공 기술은 농기구는 물론 각종 무기들도 잘 만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갑옷과 투구, 고리자루큰칼, 말갖춤 등은 철의 가공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과 일본에 철을 수출했다. 가야의 고분에서는 조형미가 뛰어난 네 자루의 용봉 장식 고리자루큰칼이 발굴됐다.

주방용 칼로 태어난 ‘온고 나이프’.
주방용 칼로 태어난 ‘온고 나이프’.

◇‘사인검’의 기운에 가족의 건강을 담아 주방용 칼로 변신

㈜온고는 가야, 고구려, 신라, 백제, 조선의 제철 제련 기법을 이어받아 다층 복합판재 기법을 연구하여 현재 ‘온고 나이프’를 개발 중이다. 온고 나이프의 소재는 스테인리스 계열의 440C와 304L, 316L이다. 440C는 매우 단단하고 열처리로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소재이며 고급 강으로서 주방용 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12년 영국에서 스테인리스 강재가 발견됐다. 인류가 철로 만들어진 칼 대신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칼을 사용하게 된 시기는 100년 정도다. 산업화가 먼저 이루어진 독일과 일본은 스테인리스 칼을 우리보다 더 빨리 접하고 연구하여 상품화시킬 수 있었다. 독일이나 일본 칼이 현재 우리 식탁뿐 아니라 전 세계의 칼 시장을 점유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제 우리는 전통의 헤리티지를 이어가며 우리 제철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프를 개발하려고 한다.

일월오봉도 하단의 물결 문양.
일월오봉도 하단의 물결 문양.

온고 나이프가 담고 있는 가치와 정신은 오백 년 조선을 지켜낸 사인검과 일월오봉도의 정신이다. 사인검에 담긴 의미는 가족의 화목을 바라고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것이다. 실제로 사인검의 한 면에는 27자의 한자와 범어가 새겨져 있다. “사인검이여, 하늘의 정기를 내리고 땅의 신령을 일으켜라. 해와 달의 형상과 산과 물의 모습이네. 천둥과 번개를 치며 우주를 움직여 악을 물리치고 베어내어 바르게 하라.” 사인검의 기운에 가족의 건강을 담기 위해 주방용 칼로 변신하려고 한다. 실제로 온고는 호랑이가 네 번 겹치는 시기에 ‘오주연문장전서고’에 나오는 방식으로 의례를 갖추었다.

또한, 온고 나이프에는 일월오봉도의 물결 문양이 아름답게 나타난다. 일월오봉도에 담긴 의미는 특별하다. 칼은 음식의 맛을 주관하는 대표적인 요리 도구이자 땅에서 나온 식재료를 손질하고 자연의 오미(五味)를 느끼게 한다. 오미를 통해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책임진다. 온고의 전통문화 콘텐츠와 국가무형문화재의 기술력과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헤리티지가 바로 온고 나이프다.

 

 

 

김동철 ㈜온고대표이사 / 前한국전통문화전당 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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