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숨을 거두지 않는다
그리움은 숨을 거두지 않는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3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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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손인식-갈대꽃

가을이어서 그렇다고 애써 생각한다. 그리 급한 일도 아니건만 한 달 사이 문우(文友)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 길을 떠났다. 안성길 작가에 이어 도착한 비보(悲報). 깊은 병중에 있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찾아뵐 기회도 놓치고 단풍 물든 먼 산처럼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손인식 시인, 10월 14일 ‘갈대꽃’만 남겨놓고 표표히(飄飄-) 떠났다. 부디 바람처럼 가볍게, 부드럽게 편안하게 주무시길 바란다.

상(喪)을 마친 유족,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큰 열매인 장남 손가득 씨를 만났다. 아버지 유품이라 할 수 있는 시집을 건네받았다. 고통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셨다는 전언(傳言). 평소 자분자분했던 그 마음 오래 보고 싶었는데 그리 대하니 울컥하는 마음 추스를 길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복무하면서 ‘바른 가르침’이 몸에 밴 사람이지만 얄팍한 월급쟁이로선 늘 삶이 녹록지 않았으리라. 어느 날 귀갓길 모처럼 마음먹고 ‘보글보글’을 생각하며 ‘돼지고기 반 근’을 끊어 온다. ‘얇은 주머니 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금방 드러나는 빈한(貧寒). 가장(家長)은 절대 움츠려서는 안 된다. 건사해야 할 식구들이 있어서다.

‘돼지고기 반 근을 사면서/ 얇은 주머니 속을 더듬는다/ 없던 돈이 더 있을 리 만무하지만

반 근만큼의 사랑도 채 느끼기도 전/ 황량한 내 속마음을 아는 듯/ 잔돈부터 챙기는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나의 거친 손이 밉다 집에 와/ 던지듯 내놓은 내 삶의 무게가/ 아내의 화난 얼굴을 달래고/ 웃으며 끓인 찌개의 질긴 속살을 씹으며/ 내용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것도 사는 한 방법이라며/ 은밀하게 웃어준다.’ <시, ‘김치찌개’ 전부>

2018년에 낸 첫 시집, ‘갈대꽃’. 정년퇴임 후 유년, 고향, 역사, 이웃, 가족에 관한 시편을 모았다. 총 4부로 엮은 시집엔 56편 시가 담겨 있다.

‘시인의 말’에 남겨둔 문장 행간을 살펴보니 그늘이 보인다. 예감한 슬픔. ‘늦은 출산을 아낌없이 성원해 준 문우들과 시심(詩心)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게 도와준 아내에게 이 시집을 두 손 모아 올린다’고 써두었다.

 

생전 울산 역사에도 큰 관심을 두었던바 충신 박제상을 기리는 치술령 산조, 천전리 각석, 개운포, 세죽, 두동마을을 두루 언급해두었다. 그렇게만 끝내지는 않았다. 사회문제에도 따뜻한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그날의 함성’, ‘5월’ 등에서는 5?18 민주화 항쟁을 기록했고 ‘팽목항 파도’, ‘천궁 1호’, ‘묵언법’에서는 아직 끝내지 못한 세월호 이야기를 흘려놓는다.

한 달 전 세상을 먼저 비운 안성길 문학 평론가는 손 시인 시를 해설하면서 ‘세상과 사람, 뭇 생명과 사물에는 순수하고 따뜻한 시선을 주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질책과 성찰을 보인 사람’이라 말했다. 순정한 마음을 가진 시인 가슴 속에 활활 타던 불꽃은 꺼지고 말았지만 남긴 ‘고단’이 남은 자들에게는 ‘위로’를 던져준다.

지난 7월에는 아픈 몸을 세워가며 동인지 ‘봄시’ 제11호, ‘해바라기 머리와 저녁 발자국’에 다섯 편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고인을 보내던 날, 후배 최병해 시인이 남긴 조시(弔詩),

‘…오늘, 빈 산을 채워 놓고, 당신이 비었네/ 새도 나무도 청명한 가을 하늘도 울어/ 그 울음의 강 구비 마다 윤슬이 반짝이네/ 너무 일찍 떨어진 열매, 인연들이 앓고 있네/ 잘 가시라, 야산의 청정 소나무여/ 일상에서 열매를 빚은 위대한 거름이여,/ 더 이상 볼 수 없고 부를 수 없어/ 텅 빈 가슴에 당신 그림자만 회오리치네’. <시, ‘야산의 청정 소나무’ 부분>

살면서 한 번도 삿된 일에 곁눈질하지 않고 제 길을 가신 분 꼿꼿했던 심성을 ‘소나무’에 비유했다.

손인식 시인은 1990년 ‘충무문학’으로 등단,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신인상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봄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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