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늠름한 너를 온전히 만나는 날
[아침단상]늠름한 너를 온전히 만나는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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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항 디자인 거리를 거닌다. 특산물 거리, 동양의 거리, 화합의 거리, 서양의 거리가 새롭게 다가온다. 과거 없이 어떻게 현재를 누릴 수 있을지. 과거와 현재를 함께 누비며 한때 동해안 최대의 항이었던 방어진항을 돌아본다.

이곳은 국내 3대 어장으로 성장할 정도로 어업이 번성하던 곳이었다. 고기잡이배나 물고기 운반선으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었다. 통조림 가공공장, 금융조합, 조선상업은행 지점, 방어진 우편국 등 많은 공공시설과 편의시설들도 들어섰던 곳이다. 한때는 적산가옥들도 적지 않았다.

항 끝에는 용왕사 옆에 곰솔 나무가 있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좋아한 나무이고, 벼슬을 할 만큼 귀한 나무로 여겼다. 나무 중에 으뜸인 ‘수리’다. 이 곰솔 나무는 ‘용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용나무 아래 동굴에서 천년 살던 용이 천년이 되는 날인 삼월 삼짇날 이른 새벽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자 옥황상제가 용이 승천한 곳에 솔 씨를 내려보내 심도록 했다는 유례가 있어 용나무라 부르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용왕사의 곰솔 나무는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의 기도원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곰솔 나무 앞 법당은 해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용왕제와 풍어제를 지내는 곳이다.

용왕사의 곰솔 나무를 처음 알게 된 건 5년 전 마을조사를 위해 따라나선 게 계기가 되었다. 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이 노거수(老巨樹)는 법당건물에 둘러싸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법당 지붕과 인근 건물에까지 아슬아슬하게 뻗어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법당 안 천정의 가지는 넓은 테이프로 둘둘 말아 놓았다. 가지가 가닿은 지붕 부분은 시멘트를 발라 곰솔 나무를 고정해 놓은 듯 보였다. 나뭇가지가 썩은 탓에 여러 차례 외과수술도 한 듯했다. 건물을 피해 옆으로 자란 나뭇가지는 무게 때문에 받침대에 의존하고 있었다.

갇혀 산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손과 발을 묶고 눈도 가린 채 세상을 보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곰솔 나무는 건물에 둘러싸여 생장에 문제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근처의 땅 일부가 개인 사유지라는 이유로 곰솔 나무를 제대로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루빨리 해결점을 찾아 곰솔 나무가 매캐한 냄새와 접착제로부터 해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7년간 불법 건축물에 에워싸여 있던 이 곰솔 나무가 이제는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기쁘다. 전체 높이 7.5m, 둘레 4.5m에 달하는 의연한 자태의 곰솔, ‘ㄹ’자 모양으로 왼쪽은 뿔을 단 용의 머리, 오른쪽은 용의 꼬리가 연상되는 모습이 꼭 용을 닮았다.

이제 고스란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있는 곰솔 나무를 만나니 한결 늠름해 보인다. 곳곳에 가지들은 ‘ㅁ’자 모양을 하고 있다. 스스로 공간을 찾아 나아가려 했던 곰솔 나무의 몸짓을 보는 듯하다. 그들 나름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곳곳에 옹이에서 나는 송진들이 곰솔의 눈물처럼 보인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눈물….

사람들 속에서 사람처럼 부대끼며 살아온 나무다.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며 위로의 덕담도 건네주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몇 세기나 더 오래도록 살아낸 곰솔 나무의 얘기를 앞으로도 들어야만 할 것 같다. 나무에 손을 얹고 “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해 본다.

방어진항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가장 나이 많은 할아버지 곰솔. 단단한 기운을 받고 싶은 날이면 할아버지 나무를 만나보자. 배가 출항할 때나 돌아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인사를 드리고 간절히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줄 것만 같다, 곰솔 할아버지가.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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