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감정
언어와 감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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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은 희로애락의 표현이 꽤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땅을 치며 후회하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다.’와 같은 감정 표현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 신발을 벗어서 땅을 치는 모습이나, 바닥에 주저앉아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치며 울분을 터트리는 모습, 초조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는 행동은 7, 80년대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기쁨을 표현하는 말에도 ‘기뻐 날뛴다.’, ‘하늘을 뛰어오를 듯 기쁘다.’ 등이 있다. 이런 표현을 접한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직접 ‘대박’, ‘미(美)쳤다.’란 말로 기쁨을 표현할 것이다. 이에 비해 슬픔을 표현하는 말은 다른 말로 대체되기보다는 입에 올리지 않는 경향이 짙다. 장례식장에서는 유족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다. 그야말로 슬픔을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대신하는 것이 미덕이 된 듯하다.

본디 일본의 경우는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일에 매우 소극적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도 거의 없으며 말로 표현할 때도 매우 억제된 표현만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유족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는 해도 소리를 내어 슬픔을 드러내지는 않으며, 그런 행동은 ‘보기 흉하다’로 여긴다. 일본문화에서는 꺼리는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오해받는 100가지 말과 행동’(한울출판사)이라는 번역서에는 일본인의 감정 표현은 외국인에 비해 단조롭다고 일본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서양인은 의사소통을 할 때 마음과 표정이 일치한다. 이 책에서는 일본어 전통 가면 무극인 노(能)를 오페라와 같다고 비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표정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상태와 표정을 꼭 일치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인은 일본인이 말할 때 그 표정을 보고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들며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같이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문화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속으로는 심각하고 중대한 일로 여기면서도 말로는 극히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위의 책에서 하나의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2010년에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문제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I’m a little bit worried…….’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문제가 이렇게 중대한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현지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었다. 일본적인 의사표현 방식을 그대로 영어로 직역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얼굴 표정에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한때 일본의 택배회사에서는 물품을 직접 전달할 때 항상 물품을 들고 뛰도록 강요했고 그런 열의가 고객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하라고 지시했었다. 고객은 대부분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택배기사를 대하게 된다. 이는 업무가 아닐 때도 마찬가지다. 약속에 늦은 일본인은 누가 봐도 뛰어온 듯이 다급히 숨을 몰아쉬며 진지한 얼굴 표정으로 약속에 늦은 일을 사과하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이것 역시 일본문화의 일면이다.

필자의 일본인 지인은 한국인이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의 행동이 특이하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다급한 기색 없이 웃음을 띠며 ‘미안! 차가 너무 막혀서.’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한국적일 수 있다. 이때의 웃음은 애교를 띤 웃음이거나 미안한 마음에 상대방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의 웃음이라고 한국인끼리는 이해한다. 이 역시도 다른 문화권에는 쉬이 통할 리가 없다.

한국인의 감정표출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해서 상대에게 어떤 영향이나 효과를 기대하는 데 반해 일본인의 소극적인 감정표출은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기본적으로는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듯하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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