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오목한 시인이 전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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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1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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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서형오 -급식 시간, 신발 멀리 차기

1. 급식 시간

‘청소년 시’라지만 감동이나 울림 진폭은 깊고 넓어서 굳이 장르에 가두어 둘 필요가 없다. 시편은 관찰자 혹은 화자(話者) 입장을 버리고 당사자 관점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한다. 다만 구술 내용이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예를 들면 ‘우산 도둑’이란 시에서는 학교 앞 분식점에서 잃어버린 우산 때문에 비 맞고 등교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양말도 젖고 기분도 젖어 짜증이다. 이때, 국어 선생이 우산을 받쳐준다. 다정하게 한마디 건네며. ‘몸이 젖더라도 마음은 젖지 않기를 바란다’며. 여기서 끝나면 시인은 ‘꼰대’가 된다. 비 맞은 아이가 생각한다. ‘국어 샘은 마음이 젖어본 일이 많았을 것’이라며. 나아가 본인은 잃어버린 우산 때문에 기분 상했지만 우산 도둑은 ‘마음이 젖어 무거울 것’이라고 되려 걱정한다.

서형오 시인 시는 반전(反轉)이 묘미다.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는 일. 그게 바로 시가 가진 힘이다. 직업이 선생이어서 가르침에 능할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꾸짖는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아이들을 안고 있는 네 손가락이다. 참 따뜻한 시인이다.

‘가정 방문’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서 시인은 학생들이 디뎌온 어제와 오늘, 내일을 따라간다.

그래서 서 시인 시를 읽고 있자면 자꾸 마음이 오목하게 되는 겸손과 진심을 알게 된다.
 

 

2. 신발 멀리 차기

두 번째 시집이다. 2019년에 낸 첫 시집, ‘급식 시간’은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애먹었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대성통곡이다. 유독 이번 시편에는 가장(家長)을 자주 불러내 가족을 이야기하는데 햐, 이건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슬픔이다. ‘신발 멀리 차기’에서 일등 먹은 학생이 저 멀리 날아간 한 짝을 주우러 깨금발로 뛰어간다. 기쁨이 아니라 별거 중인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잠시 높은 곳 먼 데에 갔다가/ 땅으로 내려 온 신발을/ 찾으러 가듯이/ 엄마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여기까지였으면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 폰을 만지작거리며 길을 걷다가 길가에 떨어진 은행알을 밟아버린 신발. 냄새나는 신발 바닥을 닦으며 생각하는 아이. ‘이렇게 맨몸으로/ 낮고 험한 데를/ 가려주는 것이 있었구나’.

여기까지였어도 충분히 좋은 데 더 나간다. 새벽시장 채소 떼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부모, 나동그라진 신발을 떠올리며 끝까지 연을 이어간다.

‘그때부터/ 나와 동생을/ 마음속에 태우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낡은 신발 네 짝’.

‘싸움과 싸움’, ‘변비’, ‘아빠 구두’, ‘계약금’, ‘설거지하는 아빠’, ‘이사’, ‘아빠의 폐’ 등을 둑 무너지듯 내 마음도 무너져 몇 번을 읽다 말다 했다. 부재(不在)를 결손(缺損) 처리하지 않는 안도감이 겨우 다행에 닿는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신발 멀리 차기 놀이를 한다/ 발등에 신발을 걸고/ 힘껏 발을 내뻗자/ 포물선을 그리며/ 신발이 날아간다/ 마지막에 찬 내가/ 1등이다/ 멀리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우러/ 깨금발로 뛰어가면서/ 생각한다/ 아빠의 마음도/ 별거 중인 엄마한테/ 깨금발로 뛰어갔으면 좋겠다/ 잠시 높은 데 먼 데에 갔다가/ 땅으로 내려온 신발을/ 찾으러 가듯이/ 엄마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신발 멀리 차기’ 전부>

누나가 국어국문과를 다닌 것이 좋아 자신도 그런 공부를 했다는 시인. 제1회 전국 예쁜 손글씨 공모 최우수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예쁜’이라니. 서 시인 손글씨는 참 단정하고 바르다. 살짝살짝 휘는 글씨체는 요란하지 않아 좋다. 널빤지가 보이면 주워 와 글씨를 쓴단다. 건성(乾性)인 타인을 수성(水性)으로 용해(鎔解)시키는 작가다.

그는 학교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더 좁게는 ‘교실에서 건져 올린 희망’을 ‘언어로 지은 집’, ‘시’(詩)를 완성한다. 아이들 시선을 외면하거나 비켜서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찾은 이야기만 전달한다. 그는 선생이 아니고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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