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
돈의 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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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교과서에 어려운 말이 나올 때가 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말들이다. 아이들이 어떤 뜻인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 준다. “대체로 OO주의 앞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야. 자본주의는 자본, 돈이 중요한 사회라는 뜻이지.” 한국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다. 그만큼 돈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도 그 힘은 유효하다.

올해 교육 일상회복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일종의 교과 중심의 맞춤형 보충수업이다. 기초학습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국·영·수 프로그램이나 그 외에 학습 보충을 희망하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수업이다. 개설과 신청은 100%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국·영·수 외에도 다양한 교과에서 평소 수업에서 진행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가 개설되었다.

필자의 경우 ‘교실 밖 철학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아, 사랑, 삶의 의미 등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프로그램인데 신청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하고 싶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수업을 하니 매번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이런 프로그램은 모두 교육청이 지원하기 때문에 학생 수가 적어도 진행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5명으로 시작했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돈의 힘이다.

돈의 힘은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올해 학급당 학급비가 50만원씩 지급되었다. 담임선생님은 그 돈을 아이들을 위해 자유롭게 쓰고 연말에 영수증을 첨부해서 간단한 보고서와 정산서를 작성한다. 이 돈으로 학급 분위기 조성을 위한 행사도 하고, 간식도 사고, 시험 응원 초콜릿도 구입한다. 이런 작은 배려와 챙김이 학급 분위기를 보다 긍정적으로 만들고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도 좀 더 돈독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국회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을 개편하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교육교부금은 매년 국민이 내는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를 더해 정해진다. 문제는 최근 교부금이 대거 증가해도 초중고 학령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므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초·중·고등학교에 교부하게 되어있는 교육세 3조 6천억원을 고등·평생교육으로 돌리겠다는 것이 재정당국의 의견이다. 그렇게 되면 울산의 경우 매년 약 700~800억원의 예산이 줄어들 전망이다.

교육청 예산의 80% 정도가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이라고 한다. 학생 수가 줄어서 예산을 줄여야 한다지만 학교 수와 학급 수는 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하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의 경우 학년당 학급이 12개나 된다. 학급당 학생 수도 30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360명이나 되는 학년 아이들의 특징은 고사하고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힘들다.

교사가 더 많아지면 편해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교사의 잡무가 줄어들어야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업무에 치이고 빡빡한 수업 시간을 소화해낼 여유가 없는 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기는 쉽지 않다. 말 그대로 ‘헌신적인 노력’에 기대야 하는데, 그런 구조는 지속할 수 없다.

게다가 학교에서 요구되는 교사의 종류는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국어, 영어, 수학, 기술·가정과 같은 교과교사 외에 상담, 영양, 사서, 보건교사도 학교별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교사의 시수 부담으로 인해 학교 내 비교과교사의 수는 적은 편이다. 필자는 학교에 다양한 영역의 교사가 근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불확실성’이다. 미래는 예측이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인재를 기르는 획일적 교육과정으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사회를 살아갈 사람을 교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돈이 중요하기는 중요한 것 같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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