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교육
최대의 교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1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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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정당국이 유·초·중·고등학교에 교부하게 되어 있는 교육세 3조 6천억 원을 고등·평생교육으로 돌리겠다는 발표를 듣고, 이들은 교육을 무엇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 교육열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나라 학부모님들과 교육이 범국민적 관심사인 나라가 맞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사실 2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는 학부모님들의 교육열이 ‘입시열’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교육에 관한 범국민적 관심은 교육 자체보다 입시 제도에 관한 관심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학교 단위에서 매년 실시하는 ‘교육과정 수립을 위한 학부모님들의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학부모님들이 원하는 교육의 1순위는 언제나 ‘인성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성교육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습니까? 어떤 교육은 좋은 인성을 함양시키고, 어떤 교육은 인성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실체 말입니다. 아마도 인성교육이 1순위라는 것은 교육에 담겨있는 가치성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입시가 중요하고 입시 제도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하더라도 교육이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우리 학부모님들의 마음은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재정당국의 최근 발표는 인성교육을 1순위로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의 마음과는 정반대인 행정 조치입니다. 그리고 교육에 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 입안임이 분명합니다. 인성교육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교육이라는 것 또한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3대 주체는 교사, 학부모, 학생입니다. 그리고 이 세 주체를 ‘교육공동체’라 일컫습니다. 교육의 주체를 교사나 학부모 그리고 학생, 어느 한쪽에 두지 않는 것은 교육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동시에 어느 한쪽만 만족시키지 않으면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성을 실현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고, 교육공동체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가치를 지향하며 묵묵히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적어도 ‘이만하면 되었어’라는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교육은 항상 부족하고, 더 채울 것이 남아있고, 반성해야 할 그런 대상입니다. 교육은 지금 당장의 결과물이 좋다고 해서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력해도 부족하다는 말은 최대의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이지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도출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재정당국의 발표는 필자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마치 유·초·중·고에 필요 없는 예산이 잡혀있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밝힌 교육의 성격을 돌이켜보면, 교육에 필요한 예산이 얼마인지 누가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교육에 필요한 예산이 얼마라고 당당히 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최소한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교사도 최소한의 교육만 하고, 학생도 최소한의 교육만 하고, 학부모도 최소한의 교육만을 기대하는 것이 정부가 원하는 교육입니까? 최소한의 교육으로 최대한의 교육적 효과를 내는 것이 정말이지 좋은 교육입니까? 그것은 경제 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경제 논리에 밀려 교육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사태를 보면서 교사로서의 무능력과 자조적 반성 속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심문규 다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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