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사라진 애정을 다시 찾고 싶다
-235- 사라진 애정을 다시 찾고 싶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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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질문을 듣고 나서 “매너리즘에 빠져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고 일전에 기고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의 열정과 행동 양식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형이상학적 혹은 형이하학적인 것에 관해 애정(愛情)이 부족한 필자를 발견했다.

필자 집에는 미완성 모형비행기가 있다. 날개 길이가 2.3m나 되는 세스나 182 스카이라인이라는 스케일 모델로, 큰맘 먹고 장만한 어른용 장난감이다. 엔진, 서보모터, 송수신기 그리고 오토자이로시스템(=비행체의 앞뒤좌우 수평을 자동 유지해 주는 전자제어시스템) 등 모든 부품을 구입한 지 약 5년이 지났는데 비행기는 주익(큰날개)과 동체 조립만 끝난 상태다.

엔진, 링키지(=무선으로 비행기를 조절하는 전자제어 시스템) 조립 등의 셋팅은 아직 끝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이를 조립하기 위한 에폭시 접착제, 순간접착제는 마른 지 오래되었고 전동드릴, 전동드라이버, 라디오펜치, 니퍼, 롱노즈펜치, 조각도, 필름부착용 아이론, 클램프 등의 장비에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엘론(=비행기를 좌우로 기울여주는 보조날개) 조절용 서보모터 2개, 플랩(=이착륙시 저속에서 양력을 증가시켜주는 보조날개) 조절용 서보모터 2개, 야간에도 앞뒤를 구분할 수 있는 LED등만 조립된 주익과 일체형으로 동체와 조립되는 러더(=좌우로 비행기를 돌리는 수직날개의 방향키)와 엘리베이터(=비행기를 위아래로 방향조절을 하는 꼬리날개의 방향키)까지 조립된 상태로 서재 한구석에 세워져 있다.

책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에 서재가 있는 이유는 내가 게을러서다. 5년 전에 제주도로 이주한 아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들로 큰 책장 4개를 채웠다. 아내가 “이젠 아이들이 커서 필요 없으니 분리수거하라”고 했는데 게으름으로 인한 명령 불복종이 그 이유다. 그러던 서재가 한 달 전부터 비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강압으로 큰애가 울산으로 직장을 옮기기 위해 동거인이 되었는데, 자기 서재로 만들 요량으로 엄마 말에 순종하며 분리수거를 하는 셈이다.

항공기용 오토자이로시스템은 30여년 전만 해도 무척 고가이면서 크기가 커 모형항공기에 장착하기가 어려웠다. 약 20년 전 드론을 생각해보면 호버링(=공중에서 멈춰 있는 비행)을 하려면 드론의 아래, 위, 앞, 뒤, 좌, 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조종기의 스로틀키와 엘론키, 러더키 그리고 엘리베이터키를 조절해야 했다. 이 조작은 쟁반에 구슬 하나를 올려놓고 걸어가면서 쟁반 중앙에 구슬이 멈추게 하는 기술이라 생각하면 된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오토자이로시스템은 기계화 시스템에서 반도체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소형화, 경향화 및 저가로 제조되어 어린이용 장난감 드론에도 장착된 것이 많다. 요즘은 모든 부품이 모듈화되어 전원연결만 해주면 대부분 작동된다. 사용자는 관심과 애정만 있으면 쉽게 만들고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작동 시스템이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스마트폰으로 게임, 송금, 주식, 인터넷, TV시청, 전화, 문자 등을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책과 TV를 통해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출장길에 비행기를 보기 위해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1층 한 곳에 비행원리에 관한 설명과 함께 작동되는 모델이 제주도의 오설록 건너편에 위치한 한국우주박물관에 그대로 옮겨져 와있다. 오늘부터라도 필자의 애정이 사라진 곳이 어디인지 둘러보면서 먼지도 털어주고, 기름치며 조여주고, 쓰다듬어줘야겠다.

임 호 ㈜피유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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