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안처리 패러다임 바꾸는 ‘화해분쟁조정제도’ 눈길
학교폭력 사안처리 패러다임 바꾸는 ‘화해분쟁조정제도’ 눈길
  • 정인준
  • 승인 2022.10.0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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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진정한 사과로 풀어가는 교우관계
-울산시교육청, 6월 학교폭력 화해분쟁조정위원회 본격 도입
-회복적 생활교육·평화로운 교실 위한 학생간 관계형성 목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통해 원만한 합의 이끌어 내”

-울산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남자학생이 다수의 여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지속적으로 하다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됐다. 학교 조사 과정에서 이 남학생은 “그냥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지말라고 했던 다수의 여학생들은 “불쾌했다”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결국 이 사안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심의위가 열리기 전 ‘화해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가해 남학생이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심각하게 처리될 수 있었던 사안이 원만이 처리됐다.

-한 중학교에서는 친구간 ‘뒷담화’가 불거졌다. A학생이 한 말을 B학생이 C에게 전해 A와 C 사이가 학폭사안으로 접수됐다. 이 사안에 대해 화해분쟁조정위원회가 개입했다. 위원회는 세 학생 모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화해를 시켰다. 세 학생은 다시 친구가 됐다.

울산시교육청 학교폭력 화재분쟁조정위원들이 제시된 학폭 사례를 통해 실전 연수를 하고 있다.
울산시교육청 학교폭력 화재분쟁조정위원들이 제시된 학폭 사례를 통해 실전 연수를 하고 있다.

 

◇째려 봤다고 전학 가야 하나?… ‘웃픈 현실’

울산시교육청 엄영신(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는 “아이들 끼리 째려 보거나 모둠수업에서 누굴 배제하자는 시도조차도 학교폭력 사안이 된다”며 “최근의 학교폭력 사안은 이런 것조차도?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세분화 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미한 학폭 사안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친구끼리 서로 사과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서로의 잘 못을 따지고 감정싸움이 부모싸움으로 전이된다면 사태는 심각해 진다. 째려봤다고 전학을 가야 하는 게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가 다양해 지면서 요즘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확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이러한 경우가 다반사인데, 심하면 소송으로까지 이어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울산지역 학폭 1년 평균 1천200여건 발생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울산지역 학교에선 1년동안 평균 1천200여건의 크고 작은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고 있다. 이중 70~80%인 960여건이 경미한 사안으로 학교에서 해결되고 있고, 나머지 240여건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까지 가며, 이중 3~4%인 10건 정도가 법원 소송으로 확대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등교수업이 이뤄지면서 학교폭력 사안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언어폭력과 사이버 폭력이 크게 늘었다. 이는 지난 제234회 울산시의회 임시회에서 교육위 강대길 의원이 시교육청에 서면질문한 사항이기도 하다. 강 의원은 시교육청에 학교폭력 발생 현황을 묻고,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시교육청의 대책을 주문했다.

이에 대한 시교육청의 답변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한 학생들의 관계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폭력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울산형 혁신교육인 ‘서로나눔학교’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적용해 점차 학교 전체로 확대해 가고 있다. 학급별 또는 학년별 ‘써클활동’을 통해 관계형성과 문제해결을 미연에 방지하는 시도들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6월 학교폭력 화재분쟁조정위원회 활동에 앞서 위원회를 홍보하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학교와 학부모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6월 학교폭력 화재분쟁조정위원회 활동에 앞서 위원회를 홍보하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학교와 학부모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다시 친구로… 학교내 사안 해결 30% 향상 우선 목표

그렇더라도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학폭사안이 발생한다. 현재 학교에서는 학폭사안이 발생하면 1차 학교장이 조사해 처리하고, 재량 범위를 넘어서면 강북·남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어 해결한다.

이 두 가지 해결 방법에서 잘 처리되면 ‘다행’이지만, 학생간이나 학부모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문제는 심각해 진다.

이 때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학교폭력 화해분쟁조정위원회’다.

시교육청은 지난 6월 이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그동안 이 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시교육청은 대전에 있는 ‘푸른나무재단’과 울산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위탁해 시행해 왔는데, 실효성이 떨어져 직접 이 제도를 운영 하기로 했다.

화해분쟁조정위원회가 담당하는 학폭사안은 앞서 제시했던 울산지역 평균 학폭발생 1천200건 중 학교폭력심의위까지 가는 약 240여건 정도가 몫이다.

엄영신 장학사는 화해분쟁조정위원회에 대해 “학교폭력 사안 해결의 패러다임을 바꿀 제도”라며 “위원회가 만능은 아니지만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화해와 진정한 사과, 재발방지 약속, 부모들 간의 원만한 합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엄 장학사에 따르면 지난 6월 화해분쟁조정위원회 제도를 시행한 후, 현재까지 5건을 위원회가 개입해 3건을 해결했고, 2건은 진행 중에 있다. 엄 장학사는 “제도 시행 초기다 보니 학교와 학부모들이 잘 모르고 있어 사례 건수가 적다”며 “초·중·고 사안 1건 씩을 해결했는데, 학교 뿐만 아니라 학폭 당사자 모두 만족하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올해초 화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6명을 위촉했다. 위원들은 현직 교감, 대안학교 대표, 청소년 상담 전문가, 학교 전문상담사, 보호관찰 강사 등으로 구성됐다.

시교육청은 위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집중적인 연수를 실시해 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했다. 연수에서는 다양한 사례가 주어지고 그룹 토의를 거쳐 실제 활동의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15명이 활동 중이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으로 위원직을 사퇴할 정도로 화해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영신 장학사는 “화해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학교내 해결률을 30% 더 올릴 수 있도록 목표하고 있다”며 “위원회가 전체 학교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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