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숲 ‘고래’
바다의 숲 ‘고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0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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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김남조 님을 비롯한 원로 시인 몇 분이 문학 강연회를 위해 울산을 찾았다. 행사가 끝난 다음 날, 나는 시를 낭송한 인연으로 시청에서 준비해준 고래탐사선에 같이 타게 되었다.

고래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부풀어 정자항을 출발해서 30분 남짓 나아갔을 무렵, 드디어 그토록 그리던 고래를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밍크고래’라고 했다. 과묵하게 마음으로만 고래를 반기는 시인님들과는 달리, 나는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고래다 고래!”라고 탄성을 지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고래는 나에게 소중한 추억 속의 동물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바다와 지구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더욱 간절히 동경하게 되었다. 60년 넘게 사는 고래는 숨을 쉴 때마다 몸속 지방과 단백질 사이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한평생 33t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래 한 마리가 나무 1천500그루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고래의 배설물에는 질소와 인,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바닷속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IMF 경제 전문가들은 고래가 인간에게 베푸는 ‘생태계 서비스’ 가치는 1마리당 약 24억 원에 달한다고 말한다. 고래의 이산화탄소 저장 능력과 배설물의 긍정적 효과, 생태관광 등을 값으로 매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 10개 바다를 조사한 결과 8개 바다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고래가 많이 잡힌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상업포경은 사라졌지만, 일본은 지금도 매년 5천 톤가량의 고래고기를 소비한다고 한다. 몇 년 전엔, 아예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해서 다른 나라의 눈치를 안 보고 고래를 잡겠다고 배짱을 부린 바 있다. 그러는 바람에 국제사회에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래는 죽을 때가 되면 몸에 수십 톤의 이산화탄소를 그대로 지닌 채 바닷속 밑으로 들어간다. 고래가 이렇게 자연사하게 되면 몸에 저장된 이산화탄소도 그대로 가라앉는다. 아주 깊은 곳까지 가라앉은 고래의 사체에 저장된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 이상 바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고래는 죽어서도 인간을 돕는 고마운 존재인 셈이다. 반면 고래잡이로 고래가 죽게 되면 몸속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몸 밖으로 그대로 나온다. 앤드루 퍼싱 박사는 지난 100년간 불법 포획된 고래의 숫자를 계산한 다음 1억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몸 밖으로 배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고래가 죽은 채 떠밀려 나타나는 일이 지구촌 곳곳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런 고래의 위와 내장에서는 미세플라스틱과 나일론 밧줄 조각, 플라스틱 컵 조각이 검출되기도 한다. 한평생을 지구와 인류를 지켜주는 고마운 고래가 인간이 버린 해양쓰레기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니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고래 한 마리를 잘 보호하는 것은 수많은 나무를 심는 것 못지않게 긍정적인 효과를 본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고래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옛날 정자 바다에서 만났던 밍크고래를 떠올려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몸속에 저장하며 바다를 지키고 있으리라.

어쩌면 고래는 바다와 인류를 지키는 수호신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일에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고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인간들의 지나친 욕망으로 고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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