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기억, 그리고 기록
태풍의 기억, 그리고 기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9.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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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접어들자마자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이른 아침 조류관찰에 긴 옷을 입는 날이 잦다.

예로부터 가을은 땅과 하늘 두 곳에서 찾아온다고 했다. 실솔( ??=귀뚜라미)의 등에 업혀 오는 것은 땅에서 오는 가을이고, 뭉게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가을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을이 어찌 하늘과 땅에서만 찾아오겠는가.

황금 물결 들녘의 메뚜기는 잔치를 준비하고, 홍굴래비(→방아깨비)는 방아와 절구통을 점검한다. 파랑새는 날기를 멈춘 채 입을 다물고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아 남쪽을 바라본다. 꾀꼬리는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모습은 안 보여주고 간간이 소리만 낸다. 때 이른 붉은부리갈매기는 여름의 검은색 머리로 태화강을 찾는다.

가을 색이 서서히 우리 곁에 다가오니 어떤 이는 잠자기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책 읽기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제야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타령을 잇달아 쏟아낸다. 하지만 가을 타령도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안전안내 문자’의 태풍 내습 알림이 현실을 확인시켜 준다.

“태풍이 북상 중입니다….(하략)”(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2022.09.04.11:05.)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여 울산에 9.5∼9.6 직접적인 영향이 있음을 알려드리며 외출을 삼가시고…(하략) ”(울주군청·2022.09.04.11:22.) “오늘 19시 00분 태풍주의보 발효.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 빗길 안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행정안전부·2022.09.05.17:01.) “내송삼거리부터 다방 6교까지 지방도 1077호선 1㎞ 구간 통행 제한. 사송 택지 내 우회도로 이용 바랍니다.”(양산시청 2022.09.06. 05:02.)

이상 차례로 알려준 3건의 안전안내 문자 가운데 양산시청에서 알려준 정보에 특히 관심이 쏠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태풍 사라호’의 기억이 겹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1959년 9월 17일 당시 7살의 필자는 태풍 사라호를 양산에서 경험했다. 자다가 뺨에 적시는 물기를 느끼고 일어났다. 내송천의 내송교는 떠내려온 나뭇가지가 걸려 다리가 막혔다. 흐르지 못한 물의 소용돌이가 조래 효과를 일으키며 천변에 살았던 우리 집으로 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곤히 자다가 얼떨결에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헤엄친 끝에 세 명의 자식을 담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 뒤 피난길에서 돌아와 집을 찾았다. 그러나 집은 온데간데없었고 집터는 모래사장으로 변해있었다. 기르던 닭, 토끼, 염소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내송천은 넓은 모래·자갈마당으로 변해 버렸고, 죽은 소는 머리를 드러낸 채 파리를 불러모으고 있었다.

추석 명절에 들이닥친 태풍 ‘사라호’는 당시 경남 울산군 전체 군민 약 8만 명 가운데 약 5만 명에게 태풍피해를 입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4년 가수 최숙자 선생이 ‘눈물의 연평도’를 발표했다. 그 가사에는 사라호 태풍의 피해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태풍이 원수더라/ 한 많은 사라호/ 황천 간 그 얼굴/ 언제 다시 만나보리/ 해 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 등댓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1964년 발표)”

2022년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울산을 통과했다. 울산기상대에 따르면 그날 울산 기상 상황은 평균기온 23.9℃, 최고기온 27.4℃, 최저기온 18.6℃, 평균 운량(雲量) 5.0, 일(日) 강수량 110.4mm였다. 태풍 힌남노가 역사적 흔적을 남긴 것이다. 울산시는 지난 12일, 태풍으로 인한 도로·사면 유실이 52건, 하천 유실 6건, 상수도 파손 4건, 주택 반파·침수 7건, 축대·담장 파손 12건, 기타 191건 등 총 272건의 태풍피해에 대한 응급 복구를 완료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울산시민들에게 알렸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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