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잊고 있던 사랑의 감성을 되찾아
-230- 잊고 있던 사랑의 감성을 되찾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9.0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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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가 나온다는 호기심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게 되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뿌연 안개,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서게 한 영화. 과연 박찬욱 감독은 이토록 서늘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형사로 나오는 해준은 직업적으로 가정적으로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랜 정서적 결핍이 감춰져 있다. 해준은 아내 정안과 피상적인 대화와 사랑을 나눈다. 모두 계량화된 수치로 드러난다.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교감을 시도할 뿐이다.

해준은 본능적인 이끌림과 안정감을 갈망한다. 평소 입으로 숨을 쉬느라 잠을 깊이 못 자던 그가 서래 앞에선 코로 숨을 쉬며 단잠에 빠지게 된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기만을 일삼는 자들에게 곤한 잠을 선사했다던가. 해준에게 운명은 아내가 아닌 서래처럼 느껴진다. 불륜으로 얽히는 이끌림이 해준에겐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운명으로 다가온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새로운 감정에 빠져든다. 해준의 관음은 자연스레 망원경으로 건너편을 관찰하는 모양새로 빠져든다.

은밀한 관음이 이어진다. 한 사람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면 다른 사람이 상대를 쳐다보는 관음. 눈으로 서로의 마음을 담고, 두 사람의 관음을 서정적인 사랑의 단계에 머물게 하는 중요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사건 해결에 대한 욕구와 서래에게 이끌리는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해준. 번뇌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현대인의 표상이다. 해준과 서래에게 안개는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발전시키는 기폭제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함과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이 뒤엉킨 마음. 서로의 존재와 감정에 대한 경계심과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담배라면 질색하는 아내와 담배를 피우며 요리하는 서래. 해준은 서래에게 보다 진한 미소를 드러낸다. 마치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를 내뿜는 담배에서 억압되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며, 담배를 통해 가식을 진심으로 뒤바꾸는 모습이 보인다. 살인 용의자면서도 연모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그녀가 남긴 의심스러운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해준은 연신 인공눈물을 찾는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욕심과 그녀가 범인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사심(私心)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서래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그 모호함은, 걷어내기 어려운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존재로 스마트폰에 많은 순간이 담겨있다. 첫 만남에서 서래의 몸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을 담은 사진, 두 사람이 나눈 문자, 서래가 몰래 녹음한 해준의 진심.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선명하게 하지만, 한편으론 위태롭게 만드는 단서가 된다. “그 핸드폰은 깊은 바다에 버려요.” 해준을 향한 사랑을 바다 깊은 곳에 봉인하는 마지막 지혜를 발휘한다. 그것만이 자신이 죽더라도 이 사람이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을 터. 망망대해에서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그녀의 마음은 그리움과 연민으로 뒤덮인 사랑의 상처로 남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라는 서래의 말이 기억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맺어진 인연이, 엇갈린 시간을 다시 적립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과연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진심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한여름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설렘과 함께 저기서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기다린다. 모처럼 잊고 살던 사랑의 감성을 잠시 일깨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세영 메리장교육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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