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의 잠자리 먹이사냥
말벌의 잠자리 먹이사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9.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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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윙 윙 고추잠자리/ 마당 위로 하나 가득 날으네/ 윙 윙 윙 윙 예쁜 잠자리/ 꼬마 아가씨 머리 위로 윙 윙 윙…….” (정태춘-박은옥의 ‘윙윙윙’ 1절 노랫말 일부)

구월에 접어들자 잠자리의 비행이 자주 눈에 띈다. 얼마 전 태화강 중류 ‘배리끝’ 언저리에서 말벌이 잠자리를 먹잇감으로 사냥하는 현장을 관찰했다. 이 글은 쉽게 관찰할 수 없고 다시 관찰될 기약도 없는 소중한 경험을 전하는 ‘말벌의 잠자리 먹이 사냥 관찰기’이다. ‘배리끝’ 지점은 삼호교에서 시작하여 반환점인 구영교를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필자의 태화강 중류 조류조사구간이다.

그날따라 오전 내내 잠자리 떼가 산자락에서 낮게, 유유히 날고 있었다. 잠자리가 무리를 지어 나는 곳은 먹이가 풍부한 곳이다. 잠자리 떼는 하루살이를 먹잇감 삼아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을 비켜 걸어가는 내 발 앞에 갑자기 무언가 떨어지더니 뒹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고 가지째 잘라 떨어뜨린 도토리 잎사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움직임이 있어서 다가가 보니 말벌과 잠자리가 서로 뒤엉켜 뒹굴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봤다. 말벌의 앵앵거리는 소리와 잠자리가 바닥을 치는 날갯짓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쉽게 관찰되지 않는 장면으로, 말벌이 잠자리를 먹이로 잡아 처치하는 현장이었다. 동물의 먹이 사슬에는 인정(人情)도 사정(事情)도 없는 듯이 느껴졌다. 말벌은 잠자리 사냥을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듯 잠자리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잠자리를 처치하는 과정은 경험 풍부한 외과 의사의 손놀림처럼 의외로 간단하고 노련했다. 먼저 말벌의 여섯 개 발은 순간적으로 ‘집게 크레인’이 되어 잠자리를 꼼짝달싹 못 하게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입을 잠자리 목에 바짝 붙여 레슬링 선수의 목조르기 자세를 취하더니 순식간에 목을 떨어져 나가게 했다. 말벌은 이내 잠자리의 양쪽 날개를 차례로 제하더니 마지막으로 허리를 끊었다. 말벌은 그다음 잠자리의 몸통만 움켜쥐고는 수직으로 상승하더니 현장을 떠났다.

그 시간은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잠자리의 머리와 네 개의 날개 그리고 허리 아랫부분은 이리저리 흩어져있었고, 허리 아래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색깔을 살펴보니 ‘된장잠자리’ 암컷이었다. 말벌은 타고난 본능인지 대를 이어 학습된 행동인지 알 수 없으나 잠자리를 짧은 시간 안에 간단히 해치웠고, 그 솜씨는 참으로 놀라웠다.

먹이 사슬에서 잠자리의 주된 천적은 제비로 알려져 있다. 어미 제비가 물어다 주는 새끼제비의 입에 물린 잠자리를 관찰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제비는 날아다니면서 입으로 가로채기 때문에 잠자리의 희생이 크다.

잠자리에게는 거미도 천적이다. 거미는 줄을 쳐서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걸리면 꽁무니에서 줄을 내어 잠자리의 온몸을 미라처럼 휘감아버린다. 사마귀 역시 잠자리의 천적이다. 특히 맨드라미꽃에 가만히 붙어 기다리다가 잠자리가 잠시 앉는 틈을 놓치지 않고 갈고리처럼 생긴 앞발로 잽싸게 낚아챈다. 그런 다음 머리부터 씹어먹는 현장을 지켜본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잠자리는 아침노을이 일 때부터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먹이 사냥을 한다. 하지만 이날같이 먹이를 사냥하다가 오히려 말벌의 사냥감으로 희생당하는 일도 있다.

이번 관찰에서 세 가지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첫째, 아침나절에 잠자리들이 낮게 날아다니는 것은 말벌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잠자리의 천적에 사마귀, 제비, 직박구리, 참새 외에 말벌도 포함된다. 셋째, 말벌은 잠자리를 잡아 현장에서 먹지 않고 몸통을 움켜쥐고 날아가므로 새끼를 육아 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일은 말벌이 잠자리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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