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수다스러운 의사를 선호한다
환자는 수다스러운 의사를 선호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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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쓸데없는 말이 많고 혼자서 계속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수다쟁이라 한다. 난 수다쟁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뒷담화를 할 적엔 더욱 그렇다. 그럴 땐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수다쟁이와 단둘이 있거나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옆좌석에 수다쟁이가 앉아 있으면 영 신경이 거슬린다. 가능하면 수다쟁이와 함께하는 자리는 피한다. 모임에 수다쟁이가 나온다 하면 아예 참석을 안 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까칠하단 소리도 듣는다.

그래도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나 이야기하기 피곤할 때, 모임에 수다쟁이가 있으면 힘들지 않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 그래서 때론 수다가 필요한가 보다. 때론 그런 수다를 들어줄 사람도 필요한가 보다. 요즘 같이 우울한 시기엔, 같이 만나 수다 떠는 일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든, 짜증 나는 직장 이야기든, 흘러간 옛 추억 이야기든, 함께 웃고 떠들고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때론 마음의 위안이 된다. 한편으론, 수다스러운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수다란, 그 지난(至難)한 세월을, 그 짙은 외로움을, 그 아픈 설움들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힘든 세상을 헤치고 나아가려 애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수다쟁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수다쟁이는 주변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소음공해를 유발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중간에 끼어 있으면 그 괴로움은 배가된다. 그들의 대화 화제는 주로 그 자리에 없는 남의 뒷담화다. 3자 입장에서 보면, 마치 자기가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는 점에서 불쾌감을,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 떠들어대서 소음공해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2차 공해를 일으킨다.

또한, 모인 자리에 수다쟁이가 한 명만 있을 경우는 최악이다. 의외로 수다쟁이가 두 명 있으면 그들이 수다를 떨든 말든 그냥 다른 짓을 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한 명만 있을 경우는 모든 대화 주제를 독차지하고 본인의 이야기만 하게 되므로 다른 모든 사람이 고통을 입게 된다. 수다쟁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나 자신이 관심 있거나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들도 좋아할 거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다를 떨 때도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상대와 여러모로 수준이나 취향이 같아야 수다 떨기가 쉽다. 당연히 동류(同流)의식이 수다 떨기에는 최고로 적합하다. 공동의 적을 가진 사람끼리 누군가를 흉보면서 수다를 떨면 짜릿하기 마련이다. 수다를 떠는 인원수는 적을수록 좋다. 수다는 너무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어 대면 실효성이 슬금슬금 감소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수가 많으면 편이 갈리고 파벌이 생기고 패싸움이 벌어진다. 수다를 떠는 제일 좋은 상황은 1대1, 단둘이 있을 때다. 세련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정신상담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감대는 1인칭과 2인칭 사이에 생기는 접속이 가장 경사스럽다. 남녀 간 사랑이 그렇듯이.

의사는 고객 만족에 작용하는 힘이 가장 큰 파워공급자다. 환자를 치료하고 건강을 관리해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모니터링하는 주체다. 환자는 병원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시설이 좋지 않더라도 마음에 드는 의사만 있다면 불쾌한 서비스에 대해 관대하다. 의사의 말 한마디는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환자와의 소통이 잘 준비된 의사는 곧 신뢰를 주는 의사다. 문제는 대부분의 의사가 환자와의 대화에서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절제된 표현이 환자와의 소통을 더 잘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의사와는 반대로, 환자는 수다스러운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가 수다스럽다는 것은 환자의 질문에 대답을 상세히 해 주고 많은 의학적 정보를 준다는 의미다. 비록 사적인 대화라도, 이럴 때 환자는 둘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려는 의사의 노력으로 받아들인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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