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틀못’을 생각한다 ④
다시 ‘틀못’을 생각한다 ④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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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다. 과연 틀, 논틀, 논틀길, 밭틀, 밭틀길, 논틀밭틀, 논틀밭틀길 등의 어휘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이들 어휘를 검토해보니 틀못의 ‘틀’이 뜻하는 바는 김추윤 교수가 생각하는 ‘좁은 둑’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김 교수가 틀을 ‘좁은 둑’으로 본 것은 논틀, 논틀길, 밭틀 밭틀길, 논틀밭틀 노틀밭틀길 등에 등장하는 ‘틀’의 쓰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전에서는 논틀로 줄여 말하기도 하는 ‘논틀길’을 ‘논두렁 위로 난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이라고 풀이했고, 논틀밭틀로 줄여 말하기도 하는 ‘논틀밭틀길’은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따라 난 좁은 길’이라고 풀이했다. 얼핏 보면 ‘틀’이 논두렁, 밭두렁의 ‘두렁’이나 논둑, 밭둑의 ‘둑’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틀은 본래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사전에서는 틀을 ‘논밭을 구획하는 단위. 일정한 지형지물 주변에 있는 몇 개의 논밭을 하나로 묶어서 이른다.’고 했다. 그리고 밭틀길의 줄인 말로도 사용되는 ‘밭틀’은 ‘밭이 있는 어느 구획이나 지역’이라고 했다. 논틀길의 줄인 말로도 쓰이는 ‘논틀’을 단지 논틀길과 같은 말이라고만 했지만 이를 밭틀에 비추어 정의해 본다면 ‘논이 있는 어느 구획이나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할 때 틀못의 ‘틀’은 본래 ‘좁은 둑’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김추윤 교수가 ‘들, 뜰, 틀과 같은 의미로 취급되어 농경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던 것처럼 농경지가 있는 어느 구획이나 지역을 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틀못은 ‘좁은 둑으로 둘러싸인 못’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는 농경지가 있는 어느 구획이나 지역에 있는 못을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은 김 교수가 앞서 틀못을 ‘보통 좁은 둑으로 둘러싸인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라고 한 말이나 충남 서산시청의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해미면(海美面) 기지리(機池里)의 지명 유래담이 입증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명 유래담에는 ‘고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기지리 1리 너머말에 있었던 논에 두레 열 개로 퍼도 마르지 않게 물이 잘나서 백 마지기 이상의 논에 안전 관개할 수 있었던 이름난 샘이 있었다고 한다. 이 샘의 둘레에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무로 빈지를 쌓았던 연유로 이 샘 이름을 ‘기지(機池)’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들은 틀못을 좁은 둑으로 둘러싸였다거나 둘레에 나무로 빈지를 쌓은 샘이라 하여 틀을 못을 둘러싸고 있는 좁은 둑 혹은 둘레에 쌓은 빈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못이 좁은 둑으로 둘러싸였다거나 못의 둘레를 무너져 내리지 않게 나무로 빈지를 쌓았다는 것은 오히려 이들 못이 농경지로 둘러싸인 구역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유수 선생이 소개한 ‘못 이름을 틀못이라 한 것은 틀모산 김씨가 팠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는 틀못의 유래담 역시 지역 사람들이 언양의 틀못을 농경지가 있는 구역에 있다고 여겼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틀못이 농경지가 있는 구역에 있다는 인식이 못을 팠다는 표현으로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도처에 산재해 있던 틀못이 모두 농경지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든 틀못을 지역 사람들이 농경지가 있는 구역에 있다고 여겼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농경지로 둘러싸여 있던 틀못은 그런 까닭에 대부분 메워져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을 이름 등 지명으로만 남아 있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농경지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아도 농경지가 있는 구역에 있다고 인식되었던 틀못은 대부분 살아남게 되었다. 언양의 틀못에 ‘못밑들’이 있고, 경북 군위군 구천면 기지리의 기지(機池)에 ‘틀못들’이 있고, 전주의 기지제에 ‘기지들’이 있는 것처럼 여전히 농경지와 공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끝)

민긍기 창원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울산의 지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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