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넉 줄(乼)'
인생살이 '넉 줄(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2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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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보니 방마다 꿉꿉하다. 날을 잡아 이불 빨래를 했다. 널어 말리기 위해 오랜만에 마당을 가로질러 줄을 쳤다. 문득 어릴 적에 늘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빨랫줄이 생각났다. ‘줄(?)의 재발견’이라 할까.

줄은 길이가 긴 것을 말한다. 어떤 물건을 끌어당기고, 내리고, 올리고, 묶을 때 주로 사용한다. 무거운 돌을 끌어당기거나, 두레박을 속 깊은 우물에 내리거나, 태극기를 높은 게양대에 올리거나, 짐을 묶거나 할 때 주로 쓰인다.

대중가요 가사에도 줄은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민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에 〈사랑의 밧줄〉이 있다. 다시 떠오른 이유는 가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묘한 감정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가사의 시작 부분은 이러하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사랑의 밧줄’ 1절 가사 일부)

연인에게는 사랑으로 꽁꽁 묶는 밧줄만큼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사랑이 언제 식을지 모르는 것은 황혼이혼이 현실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줄의 이름도 밧줄을 비롯해 초파일의 연등 줄, 모내기의 못줄, 민원인의 연줄, 죽음의 거미줄, 유혹의 낚싯줄, 동물의 목줄, 잠수부의 생명줄, 미망인의 정신 줄, 질긴 고래 심줄 등 다양하다.

줄은 표현하는 단어에 따라 느낌이나 인상이 제각기 다르다. 생명을 잉태한 탯줄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경건(敬虔)함과 축복이 느껴진다. 하지만 ‘밥줄이 끊어졌다’는 정년퇴직 실직자의 푸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연줄(緣?)은 인연의 줄로, 이성지합(異姓之合)의 아름다운 가연(佳緣)이 그 중심이다. 반면 돈줄과 청탁줄은 때때로 구린내 풍기는 오염 줄(汚染 ?)이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그 결과는 혹독한 옥고(獄苦)로 이어지기도 한다.

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로병사를 바탕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動靜)이 감겨있는 인생살이 줄이다. 이를 탯줄, 금줄, 가연줄, 상여줄 등 ‘인생살이 넉 줄’로 표현할 수 있다.

첫 번째 줄은 서로 의지하는 탯줄이다. 탯줄은 어미와 자식을 연결하는 줄이자 300여 일 남짓 서로 의지하게 해주는 생명의 줄이다. 사랑이 없는 무의미한 탯줄은 줄이 아닌 끄나풀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줄은 세상에 알리는 금줄이다. 어미를 떠나 처음 만나는 아이 줄이 그것으로 100여 일 지나면 거두어들인다. 산모가 건강을 추스르고 있다는 표시이자 아기가 세상에 적응하는 중요한 기간이다.

세 번째 줄은 서로 찾는 가연줄(佳緣?)로, 성이 다른 남녀가 짝을 맺는 인연 줄이다. 사람마다 인연 줄이 길기를 바라겠지만, 뜻과는 달리 그 줄이 짧을 수도 있다. 서로가 함께하는 줄이라면 백 년 동안 함께 늙는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마지막 줄은 저승으로 되돌아가는 상여 줄이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일반적으로 사흘간 안치했다가 그 공간을 저승으로 바꾸기 마련이다. 이럴 때 ‘끌어당겨 보낸다’라는 의미의 ‘발인(發靷)’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넉 줄 가운데 인연 줄부터 인생살이의 돈줄, 인맥 줄 등 다양한 줄이 함께한다. 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에 의한 포승줄이 기다린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살아서 악한 일을 하면 죽어서 저승사자가 포승줄에 묶어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옛날의 소년이 지금은 이미 늙었네(昔日少年今已老)’라고 한다면, 한 번쯤 인생 넉 줄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생을 알고자 한다면 현재 하는 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욕지래생사 금생작자시=내생·來生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今生에 하는 일이 그것이라네.)’라는 글의 의미도 함께 묵상하기를 바란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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