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는 움직이는 신호등
보행자는 움직이는 신호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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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신정동의 한 교차로, 토요일 오전이지만 의외로 교통량이 적지 않다. 길 건너 상점에 가기 위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그때, 오른편에서 경찰 순찰차 한 대가 교차로를 지나 갓길에 정차한다.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분들도 그 까닭이 궁금해 시선을 고정한다. 경찰차가 멈추었다는 것, 그리 좋은 일이 아닐 확률이 더 높다. 도움을 요청한 주민신고 때문이거나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단속하기 위해, 또는 다른 공무상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차량에서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관 한 분이 내리더니, 교차로 주변에 설치된 보호난간(=가드레일)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게 아닌가. 잠시 후, 자그만 안내판을 이곳저곳에 단단히 부착한다. ‘우회전 시 일시 정지’. 그렇다. 이달 12일부터 시행하는 개정된 도로교통법 때문인 듯했다. 그 판은 주행하는 운전자가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색상대비에 신경 쓴 것 같았고, 운전자 눈높이에도 맞았다.

이번 개정안이 그저 남의 일은 아닌 듯싶다. 일상에서 운전대를 잡는 나 같은 시민이나 보행자, 즉 거의 모든 국민이 법률의 적용과 보호를 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경찰관의 모습은 홍보·계도 활동의 하나로, 애초에는 시행일로부터 1달간만 계도하기로 했다가 3개월로 연장했다. 이유는, 개정된 우회전 규칙으로 시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일부 교통경찰관은 정확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도 개정이유, 취지는 모두 이해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리 적용하는 규칙 탓에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이번 개정안의 약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법은 현장 적용이 어렵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만 실효성(實效性)이 살아난다. 경찰청에서 계도기간 동안, 현장 의견을 수렴해서 단속기준과 방법 등을 보완할 계획이다.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는 신호등 표시, 보행자 유무에 따라 주행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이를 위반하면, 범칙금(승용차 6만원, 승합차 7만원)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처분을 너무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생활 속 안전 운행 실천에 주안점을 두면 어떨까. 개정안을 시행하는 만큼, 현장에서 혼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운전자가 개정안을 최대한 잘 지키려면 교차로에 진입할 때 미리 안전속도로 서행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일시 정지하기가 수월하고 보행자 동태와 건널목 신호를 식별하기 좋다.

알기 쉽게 정리한 경찰청 문답식 자료를 들여다보니, 핵심은 건널목에 보행자가 있거나 건너려고 하는 때는, 일시 정지 후 우회전하고, 그 외는 서행하면서 우회전해도 된다. 신호등이 녹색이라도 보행자가 없으면 일시 정지 대신 서행해도 되고, 적색이지만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 정지해야 한다. 그러니 보행자 보호가 원칙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 가령, 교통약자가 초록 불에 건널목을 건너는 중 빨간 불로 바뀌었을 때도, 운전자는 차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신호 없는 건널목이라 하더라도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한다.

2019년 기준 한국의 보행사망자 비율은 38.9%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데, 평균치(19.3%)보다 무려 2배나 많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 비율이 전체의 38%나 되는데 그 중 횡단보도(건널목)에서 발생한 사고가 22.3%에 달한다.

무심코 건널목을 건너다가 갑자기 우회전하는 차량 때문에 당황한 경험, 모두 한 번쯤은 있으리라. 역지사지의 자세로, 보행자는 ‘움직이는 신호등’임을 명심하고, 내 가족 같은 보행자를 보호하는 일에 다 같이 동참했으면 한다. 양보와 배려의 마음으로 보행자를 보호하는, 사람 중심의 선진 교통문화가 조기에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또 이번 개정안을 누구나 망설임 없이 잘 실천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잘 수렴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본다.

김정숙 울산여성경제인협회 이사, 배광건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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