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학생이 옛 스승을 그리다’ 두 번째 이야기
‘오늘의 학생이 옛 스승을 그리다’ 두 번째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1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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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울산시교육청에선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울산 출신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선 교육 관련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추모하는 여러 작업을 추진했다. 그런 작업의 하나로 당시 스승의 날을 맞아 「오늘의 학생이 옛 스승을 그리다」라는 활동이 추진되었다.

그 덕분에 일제강점기의 울산지역 교육자로 새롭게 찾아낸 다섯 분 성세빈, 안태로, 이무종, 이효정, 조형진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진행되었다. ‘오늘의 학생’(울산애니원고등학교)이 다섯 분의 ‘옛 스승’을 직접 초상으로 그려 소개했고, 그 초상화와 명판이 교육청 로비에 설치됨으로써 교육청 방문객들이 계속 ‘옛 스승’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8월 12일, 「오늘의 학생이 옛 스승을 그리다」 두 번째 이야기가 울산시교육청에서 펼쳐진다. 이번에 조명되는 옛 스승은 울산 출신 교육자로서 독립운동에 힘쓴 두 분, 최현배 선생과 박제민 선생이다.

최현배(1894~1970) 선생은 울산 중구 병영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교육자였다. 주시경의 제자로 민족의 언어와 얼이 일치한다는 언어 민족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일제강점기 연희전문대학 교수로 조선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조선어학회 활동을 통해 한글 연구와 교육을 이어 왔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우리말본』·『한글갈』·『나라 사랑의 길』 등을 펴냈고, 광복 이후 한글학회와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며 교과서를 만들고, 가로쓰기와 한글전용을 주장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친동생 최현구 지사도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 당시 병영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는데, 1967년 병영 삼일사 앞 『삼일 충혼비』 글을 최현배 선생이 직접 지은 것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제민(1919~1943) 선생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출신 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 1933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거쳐 대구사범학교에 합격한 수재였다.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1년 1월, 일제 식민 지배 종식과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인 ‘연구회’를 조직하고 농업부 책임자로서 활동했다. 그해 3월 졸업 후 경주 하서공립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수재 교육에 나섰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에서 간행한 『반딧불』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면서 비밀결사 전모가 드러나 체포되었고, 그 후 모진 고문으로 1943년 10월 옥중에서 순국했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최현배 선생은 울산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하다. 그를 기념하는 글짓기 행사가 해마다 열릴 뿐 아니라, 그가 태어난 터에 생가가 복원되고, 그 옆에 외솔기념관이 세워져 그의 뜻을 기릴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었다. 그의 호 ‘외솔’을 딴 학교와 공공기관도 있다. 박제민 선생은 울산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분이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도 거의 없다. 기억할 수 있는 장소나 물품이 없으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울산 출신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힘쓴 교육자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분을 함께 기릴 수 있는 행사와 공간이 기획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의 ‘옛 스승’들을 계속 기억하고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 터전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집단 기억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잊히지 않고 전승되기 위해서는 기억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기억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되고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 출신 교육 관련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억을 응축한 기념 공간을 교육청이란 공공기관에 조성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역사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독립운동과 그 시기의 역사를 기억하고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

100년 전 그 당시를 살아간 스승들이 떠난 후에도 학생들이 그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면 스승들의 뜻은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그 뜻과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곽노승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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