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의 뒷모습
‘패스트 패션’의 뒷모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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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옷들이 진열된 가게를 지나가면 새 옷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런 냄새가 왠지 좋다. 아마도 어릴 적 새 옷 입을 기회가 일 년에 딱 두 번 추석과 설날뿐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친척이 입던 옷을 늘 받아서 입곤 했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 소풍을 가기 하루 전날, 어머니가 사준 흰색 타이즈를 입은 채 잠을 잤던 기억이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몸에 달라붙어 불편했을 터인데도 ‘나의 새 옷’이란 생각에 얼마나 기뻤으면 그랬을까.

그렇게 옷이 귀했던 탓인지 지금도 옷 사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원피스는 장롱이 비좁을 만큼 빽빽하게 걸려있다. 그중에는 몇 년이 지나도 바깥세상 구경 한 번 못한 것도 있다. ‘아! 이 옷은 굳이 안 사도 되는데, 과소비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나한테 어울리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알찬속’(=세일)이라며 사들인 옷들은, 이제 걸려있을 자리가 모자라 밖으로 삐져나오는 걸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몇 년이 지나도 한 번도 안 입은 옷은 결국 헌옷 수거함에 슬쩍 밀어 넣은 적이 많았다. ‘누군가 재활용이라도 해서 입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렇게 버려진 옷들 가운데 상품가치가 있는 것들은 재판매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하지만 많은 양은 현지에서 쓰레기로 버려진다니 안타깝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헌옷 수출량은 세계 5위라고 한다.

식수원이던 아프리카 가나의 오다우 강이 의류 쓰레기로 오염되어 검은 강으로 변했다는 사실,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어야 할 소들이 산처럼 쌓인 옷 무더기 위에서 폐섬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의류 쓰레기는 수입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피해를 준다. 의류 소재 대부분이 합성섬유여서 썩어 분해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고, 강가나 바닷가에 나뒹굴면서 유해물질이 녹아들어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이렇게 오염된 물은 현지 주민과 가축에게 악영향을 준다. 또 그런 고기를 사 먹는 사람들에게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류업계는 최신 유행을 따라잡으려고 새로운 ‘패스트 패션’을 끊임없이 출시한다. 석유가 주원료인 폴리에스터 소재의 합성섬유 옷을 세탁하면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나와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빠져나간다. 그 후 수백 년을 떠돌아다니는 사이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고, 미세플라스틱을 삼킨 어류는 먹이사슬을 따라 결국은 우리 식탁에까지 올라온다.

의류의 생산-소비 과정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슬로 패션’이 등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래 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고, 천연재료나 재활용품 같은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제품의 질을 높이면서 노동자 권리와 동물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옷뒤주 문을 다시 열어본다. 조금의 여유도 없이 비좁은 자리에서 끙끙대고 있는 옷들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 옷가지를 살 때는 집에 있는 옷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정말 꼭 필요한 옷인지 꼼꼼히 따진 뒤에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또 유행이 지난 옷은 다시 손질해서 입고, 서로 ‘옷물림’(=옷을 차례로 물려가며 입는 것)도 환경을 살리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싼값에 가볍게 사서 한 철만 입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의 뒷모습을 이제는 되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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