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공허하게 사는 거 보단 사랑하다 아픈 게 나아”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공허하게 사는 거 보단 사랑하다 아픈 게 나아”
  • 이상길
  • 승인 2022.07.28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 한 장면.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 한 장면.

 

살다 보면 그렇다. 상실감으로 가득 차 삶이 공허할 땐 가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토르:러브 앤 썬더>는 이런 시선으로 보면 영화가 완전히 달리 보인다.

사실 마블 슈퍼히어로 군단인 ‘어벤져스’팀의 멤버이자 천둥의 신(神)인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는 이젠 삶이 공허할 만하다. 2019년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우주 최강 악당인 타노스(조슈 브롤린)를 무찌르기까지 그는 잃은 게 얼마나 많았던가. 그 동안 그는 자신의 고향행성인 아스가르드를 잃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까지 모두 잃었다. 그뿐인가. 지구에 처음 왔을 때 깊이 사랑했던 여자인 제인(나탈리 포트만)과도 헤어진 지 꽤 됐다. 그렇다. 그에겐 지금 아무 것도 없다. 해서 그는 한 때 술만 퍼마시다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고, 그 탓에 근육질의 날렵한 몸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타노스가 죽은 뒤엔 정신을 차리고 운동에 매진해 다시 예전 근육질의 몸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그런 토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토르의 절친이자 같은 어벤져스 멤버였던 그는 토르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공허하게 사는 거 보단 시랑하다 아픈 게 나아.”

그렇다. 이 대사가 등장하는 순간, 이 영화는 이제 멜로로 장르가 바뀐다. 무엇보다 이 대사로 인해 가볍게만 굴러왔던 영화는 그때부터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애초에 시작부터 고통 받는 인간을 모른 척하는 신(神)의 모습을 통해 인간은 신의 사랑이 아니라 그냥 이 우주에 우연히 생겨난 존재일 뿐이라는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을 전면에 표방하고 나선 이 영화는 이후 가벼운 B급 유머로 도배가 되지만 그건 마치 삶이 너무도 공허한 나머지 잠깐잠깐 터져 나오는 헛웃음 같다. 결코 무의미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 아니라는 뜻.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참, <토르>시리즈 4편인 이번 영화의 빌런(악당)은 고르(크리스찬 베일)인데 그는 인간의 고통을 모른 척 하는 신에 분노해 우주에 존재하는 신들을 모조리 죽이고 다녔고, 그러다 천둥의 신인 토르에게까지 닿게 됐다.

아무튼 난 이 영화의 B급 유머가 나쁘지 않아 웃기려는 족족 피식피식해가며 웃어재꼈는데 그렇게 한참을 웃다보니 난데없이 이런 대사가 등장하더라. 부제인 ‘러브 앤 썬더’에서 읽을 수 있듯 이 영화는 토르의 사랑이야기로 토르가 지구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자인 제인이 다시 등장한다. 허나 그녀는 지금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제인을 다시 만난 토르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아프고 싶어. 아프고 싶은데, 그게 당신 때문이면 좋겠다고. 친구(스타로드)가 그랬거든. 사랑을 잃고 아픈 게, 공허하게 사는 것보단 낫다고.” 그리고 마침내 토르는 그녀로 인해 ‘사랑의 아픔’을 갖게 된다. 공허하기만 했던 토르의 삶에도 비로소 무언가가 생긴 셈이다.

그렇다. 공허함보다 아픔이 나은 건 어쩌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닐는지. 토르의 사랑과 아픔이 드넓은 우주공간을 넘나드는 우주대서사시인 만큼 조금 거창하게 보자면 공허함이 우주 탄생 전이라면 아픔은 우주 탄생 후 같은 게 아닐까. 빅뱅(우주대폭발)이든 천지창조든 우주 탄생 전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로 무(無)의 상태였고, 공허했다. 그랬던 게 우주가 탄생하면서 드디어 유(有)가 됐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생겼을까? 최초 수소나 헬륨 같은 원소들이 뭉쳐 먼지를 형성하고, 그 먼지들이 다시 뭉쳐 소행성이나 거대 행성, 혹은 항성(별)이 됐다. 얼마나 기뻤을까. 허나 이게 다가 아니다. 행성들끼리는 서로 충돌해 산산이 부서지기도 했고, 수명을 다한 별은 거대한 폭발 이후 다시 먼지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가끔은 블랙홀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아플까. 그렇게 창조가 기쁨이라면 파괴는 아픔. 해서 기쁘니까 우주고, 아프니까 우주가 아닐까. 다시 말해 둘 다 ‘있는’ 거다. 우주 탄생 전엔 아예 없었으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누군가와 끝이 난 뒤 Steel Heart의 ‘She’s Gone’같은 슬픈 음악들을 들으며 아픔을 달랬던 그 때가, 편했지만 공허했던 시절보단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허공에서 뭔가 잡히는 느낌. 다들 내가 아파도 좋을 만큼 괜찮은 분들이었던 것 같다. 뭐 이제 다 지난 일이 됐으니까. 훗.

해서 오늘 밤엔 자칫 공허할 뻔 했던 내 삶에 뭔가를 있게 해준 그녀들에게 잠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맥주 한 캔 따고 자련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아니다. 영화칼럼 쓰는 사람인데 영화인답게 전설적인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명대사를 빌려 좀 더 극적으로 해보자. “오갱~끼 데스까? 와따시와 깽끼데스(잘 지내시죠? 전 잘 지낸답니다)”

2022년 7월 6일 개봉. 러닝타임 119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