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울산교육에 제안하다’
‘중학생, 울산교육에 제안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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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다. 필자가 보살피는 중학교 2학년은 일주일에 3시간 도덕 수업을 한다. 그중 1시간은 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주제로 토론하는 디베이트 프로젝트다. 당시는 코로나가 극성부리던 때여서 전체 수업 과정을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다.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코로나로 토론이 중단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6월 초에 모든 토론과 평가가 끝났다. 수업을 7월 중순까지 해야 하는데 정말 난감했다. 한 달 반 동안 무엇을 해야 하지?

같은 학년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박상욱 선생님이 제안했다. 이번에 교육감 선거를 치렀으니 이를 교과 내용과 연결지어 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디베이트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울산에서도 2명의 후보가 각자의 공약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정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학생들은 선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거라는 기대감이 별로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박상욱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이 시민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시민적 효능감을 가지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필자도 기꺼이 동의했고 남은 기간에 ‘2022 중학생, 울산교육에 제안하다’라는 제목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그 취지부터 설명했다. 학생들이 정책을 제안할 수 없는 현실을 먼저 설명하고 학생들이 새 교육감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울산교육의 모습과 방향을 제시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만든 공약들은 교육청에 우편으로 보낼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약이나 제안이 실제로 교육청에 보내진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면서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울산 교육감 후보의 공약집을 복사해서 나눠주었다. 집에 공보물이 있는 아이들은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교육감 후보들이 울산교육을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어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 두 후보의 공약집을 모두 훑어보게 했다. 그리고 공약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공약과 손질이 필요한 공약을 골라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모둠별로 대표를 선정해 원탁 토론을 진행하게 했다. 원탁 토론이 끝나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울산교육 정책 공약을 작성했다. 그러고 나서 모둠별로 공약의 근거가 타당한지 토론한 뒤 모둠별로 공약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을 끝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반별로 남은 시간이 달라 과정도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공약집에 적힌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전문 용어는 사전을 찾아도 알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제시된 공약이 실현되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모둠으로 혹은 교사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시험 기간의 평가 항목도 아닌 프로젝트에도 무척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모르는 말은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정책의 장점과 예상되는 문제점과 대안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놀랍고도 고마웠다. 프로젝트의 결과를 우리끼리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감실로 보낸다고 귀띔해준 것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교실에서 진행된 수업 내용이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때 아이들은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태도를 바꾸게 되는 것 같았다. 수업에 관심과 흥미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수업을 마쳤지만, 모둠에서 만든 최종 공약이 마음에 안 들어 주말에 고쳐오겠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번 주에는 우편으로 교육감실에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 나름의 공약에는 매점 설치, 사물함 크기 확대, 교육과정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솔직한 생각과 이유가 담겨있다. 어른들의 눈으로는 어설프기도 하고, 엄청난 어려움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이라는 점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연히 시작되었으나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료 선생님에게 실제의 교육과정과 삶을 연결하는 수업을 배울 수 있었던 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의 제안에 대해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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