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끝마을의 낮은 지붕들
성끝마을의 낮은 지붕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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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 숲거랑공원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오르면 성끝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오늘도 반갑게 맞아준다. 나지막한 집들 너머 바다 위에는 배들이 그림처럼 떠 있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의 구름들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얕은 술바위산 오솔길을 걷는다. 오래된 해송들이 그득한 대왕암공원을 지나 슬도 쪽으로 향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대왕암 오토캠핑장을 시작으로 흙길이 이어진다. 바닷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사색하기 좋고, 차가 안 다녀 마음 놓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코스다. 바람과 파도와 새들과 구름이 들려주는 얘기를 듣는다. 오롯이 자연과 하나 되는 또 다른 시간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는다.

소리체험관으로 향하려는데 성끝마을 입구의 문구가 시선을 붙든다. “이대로는 못 나간다. 이주대책부터 마련하고 사업을 진행하라” “성끝마을을 향토문화마을로! 나고 자란 고향이니 떠나라고 하지 마오!”

94만2천㎡의 성끝마을은 대왕암공원 조성사업 부지인 기획재정부 소유 국유지여서 마을 전체 집들이 무허가 건축물이다. 경로당 지원도 못 받는 각종 혜택의 사각지대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전체 186세대 가운데 152세대가 몰려 사는 아랫마을 117채는 ‘향토 어촌마을’로 보존하고, 34세대가 띄엄띄엄 사는 윗마을 22채는 마을을 떠나야 할 철거·이전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철거 이유가 공원시설 설치와 경관 향상에 있다던가.

개발과 보존은 언제나 부딪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겐 득이 되고 누군가에겐 실이 된다. 개발 논리에 밀려 몸부림치는 성끝마을, 수십 년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살아온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수평선 위의 배들을 보면서 휘어진 허리를 펴던 그들에겐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던 삶의 터전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사람들, 오직 뱃고동 소리를 위해 비지땀 흘려가며 용접 불꽃 일으키던 그들이다. 그토록 부르짖는 개발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개발이 공공의 이익보다 실적에 치우친 정책의 산물이라면….

삶의 터전은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지자체의 정책이 아무리 좋다 해도 주민들의 의견부터 들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몇몇 정책입안자들의 보여주기식 정책이,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을 더는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동구에 산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이젠 고향에서보다 더 오랜 생활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쉼터 같은 슬도 주변을 돌아보는 길에 늘 고향 같은 편안함에 이끌려 자주 찾곤 하던 성끝마을. 옹기종기 둘러앉아 얘길 나누는 것 같은 채소밭이며, 나지막한 집들과 담장 그리고 골목마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귀한 것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멍해질 뿐이다. 동구의 최고 명소를 꼽으라면 이곳 슬도와 성끝마을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던 나였다.

소멸만이 답은 아니다. 소멸해서 잃어버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미래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고되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마음의 휴식처로 남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성끝마을의 낮은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그 바다. 낮은 지붕이 없다면 여느 바다와 다를 게 무엇인가. 담장 속 벽화와 어깨를 겨누듯 하는 꽃과 나무, 개와 닭. 그리고 담장 아래 땅접시꽃이 빤히 쳐다보며 귀엣말을 한다. “어디에서 나 같은 꽃을 만나겠니?”라고…. 문득 ‘세월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상품’이란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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