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비스’-엘비스, 인류 최초의 아이돌
영화 ‘엘비스’-엘비스, 인류 최초의 아이돌
  • 이상길
  • 승인 2022.07.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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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바즈 루어만 감독의 <엘비스>는 나 같은 영화광이 아니면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재밌는 설정이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 엘비스(오스틴 버틀러)의 매니저인 톰 파커 역을 ‘톰 행크스’라는 배우에게 맡긴 것. 이게 왜 재밌냐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4년작 <포레스트 검프>라는 명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거론되고 있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 포레스트(톰 행크스)는 불편한 다리에 남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지능을 갖고 태어났다. 특히 불편한 다리로 인해 그는 어렸을 땐 다리에 늘 보조기구를 차고 다녔는데 잠시 숙박업을 했던 집에 어느 날 음악을 하는 청년이 찾아오게 된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쉽게 친해졌던 어린 포레스트는 그 청년이 치는 기타 앞에서 보조기구를 찬 채 한껏 다리를 벌린 뒤 다리떨기 춤을 추게 된다. 방정맞게. 하지만 그 춤이 멋지다고 생각한 청년은 포레스트의 춤을 무대에서 써먹게 되고, 그 춤은 전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그랬다. 그 청년은 바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그리고 비록 영화 속 설정이지만 엘비스에게 다리떨기 춤을 가르쳤던 포레스트를 커서는 톰 행크스가 연기를 했고, 그런 톰 행크스는 다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대기를 다룬 <엘비스>에서 엘비스의 실제 매니저였던 톰 파커 역을 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꾼 춤을 가르쳤던 배우가 30여년의 세월 뒤 그 춤을 췄던 가수의 매니저가 된 셈. 분명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장난기 가득한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싶다.

헌데 그저 단순한 조크로 치부하기엔 <엘비스>에서 톰 파커의 역할은 지나치게 비중이 크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 그러니까 <엘비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니저인 톰 파커가 엘비스의 죽음과 관련해 일종의 변명을 하는 영화다. 다들 자신이 엘비스를 착취해서 그를 죽였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고 한번 제대로 판단해보라고.

사실 그의 항변에도 나름 일리가 있는 건, 톰 파커가 없었으면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꾼 전설의 엘비스 프레슬리도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 비록 말년에 자신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 엘비스를 이용하긴 했지만 쇼 비즈니스 업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서 엘비스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기회를 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관객들이 진정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오히려 엘비스의 삶이 아닐까 싶다. 바로 엄혹했던 시대 유난히 빛이 났던 ‘혁명가’적인 삶. 그랬다. 엘비스는 가수를 넘어 분명 혁명가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미국 중남부 맴피스 흑인 마을에서 흑인들과 어울리며 자랐던 엘비스는 자연스레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가스펠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고, 커서 가수가 된 뒤 거기에 백인 음악인 컨트리를 가미해 ‘로큰롤’이라는 혼종 음악장르를 만들어냈다. 혼종이라지만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케네디를 좋아했던 그는 사실 백인과 흑인의 화합을 노래했다. 때가 때인지라 당시 미국은 흑백 차별이 여전히 심했고, 자신은 백인이지만 로큰롤로 차별받는 흑인들의 삶을 어루만지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노래했던 것이다.

허나 정작 그의 음악에 푹 빠진 쪽은 오히려 백인들이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그랬는데 흑백차별 속에서 백인으로서 단정함만을 강요받았던 그녀들에게 방정맞게 미친 듯이 다리를 떠는 엘비스의 춤은 숨겨진 내면의 열정을 폭발시켰다. 그러니까 ‘뭐야. 이래도 되는 거였어?!’라는 마음으로 남들 시선 때문에 그 동안 꽁꽁 숨겨왔던 본능을 발산했던 것. 해서 그녀들은 미친듯이 엘비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와의 키스를 원했다. 허나 그녀들이 닿은 엘비스의 손과 입술은 정작 세상 앞에 당당해진 그녀 자신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자신의 삶을 바꿀 용기를 준 엘비스는 그들에게 우상(Idol)이 됐다. 바로 인류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어릴 때 책상에 앉아 다리를 떨면 어른들로부터 꼭 지적을 받았었다. 복 나간다고. 하지만 커서 알게 됐는데 책상에 앉아 다리를 떨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혈액순환 장애는 만병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뭐야 이거. 떨면 경박해 보이고, 안 떨면 건강에 해롭고. 우짜라고! 하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 <엘비스>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순간 엘비스는 당신에게 이렇게 속삭일 거다. “그냥 니 하고 싶은 데로 해”

2022년 7월 13일 개봉. 러닝타임 159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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