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울산 석유화학단지 땅속 이야기
-223- 울산 석유화학단지 땅속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2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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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로 4년간 이어 온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지하배관 안전진단 사업’이 마무리됐다. 2017년 기준으로 20년 이상 땅에 묻혀 있던 화학배관, 오일배관, 가스배관 등 총 900여km 배관에 대한 진단을 완료한 것이다. 진단을 수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울산 땅속 이야기를 풀어 놓겠다.

지인들은 꼭 묻는다. “매스컴에 나오는 대로 정말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지뢰밭이냐?”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곤궁해진다. “정말 위험한 상태”라 하면 관(官)이 “무슨 근거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시민들을 불안케 하느냐?”고 할 터이고, 반대로 “전혀 문제없다. 관리가 잘 되고 있다.” 하면 “뭐 하러 세금 써가며 쓸데없이 진단하느냐?”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아주 위험한 상태는 아니나, 그렇다고 안전한 상태도 아니다. 아직은 관리가 가능한 상태다.”라는 대답을 찾아냈다. 이러면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는 하나, 더 이상의 대꾸는 없다. 하지만 이 대답은 팩트(fact)에 근거한 것이다.

단지 전체를 걸어 다니며 배관의 경로와 심도를 측량하고 시와 업체에서 제공받은 GIS 도면과 비교해 봤다. 일치율은 무려 98%에 달했다. 수년 전에 국비를 들여 GIS 실측 용역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설 심도가 얕은 곳이 다수 발견된 점이다. 이런 곳은 굴착공사 때 배관의 손상이 쉽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보완이 필요하다.

단지 거의 전역에 대해 토양부식 지도를 완성했다. 어느 지역이 부식성이 높은 토양인지를 밝혀낸 것이다. 토양 비저항이 5천Ω·cm 이하인 곳은 별도의 방식 조치가 없으면 급속하게 부식이 진행될 수 있다. 의외로 넓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각종 시설물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토양부식 지도는 공공데이터로 지정해 활용됐으면 좋겠다. 이번에 진단한 배관은 모두 부식에 대비해 전기방식을 하고 있다. 전기방식이 미흡하면 부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진단결과, 전 구간의 95%가 방식상태가 양호했다. 나머지 5% 구간도 보완을 유도하여 양호구간으로 전환됐다. 이 사업의 큰 성과 중 하나다.

모든 지하배관은 피복하여 1차적으로 부식으로부터 보호받는데, 여러 원인으로 피복손상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만약 손상부 주변 토양의 부식성이 높고 전기방식도 미흡하다면 부식이 발생하여 누설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 구간에 대해 피복손상 지점을 탐측하여 약 3천 개의 손상부를 발견했다. 이 중에서 손상 정도가 심한 곳은 56개소였으며, 대부분 보수가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나머지 손상지점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총 35개소의 피복손상 지점을 시험굴착하여 실상을 확인해봤다. 대부분 피복손상부로 확인됐으나 압입관도 4개소가 발견됐다. 압입관이란 도로나 철도를 횡단할 때 하중에 의해 배관이 변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큰 배관을 미리 묻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번에 발견된 4개소는 모두 압입관과 배관이 접촉되었으며, 배관 사이의 공간엔 주변에서 스며든 각종 오수가 차 있었다. 그러면 압입관 내부는 부식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 된다. 이런 압입관이 단지 내에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보여 별도의 진단과 대책이 시급하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4년간 진단하면서 많은 데이터가 축적됐고, 새로운 사실과 문제점도 발견됐다. 얽힌 실타래를 풀 듯, 하나씩 문제점을 해결하다 보면 ‘울산 지하배관 안전사고 제로’도 요원한 일은 아니다. 아직은 관리가 가능한 상태이기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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