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222-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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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여정이 늙어가는 과정인지 익어가는 과정인지는 저마다의 숙제가 아닐까? 나는 어르신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가득 채워짐을 배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 마음을 주고받는 일. 그것은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고 신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상대의 스펙이나 명함이 아닌,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마주하고, 존재 자체로 보호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생명임을 종종 잊고 산다.

80대 중반의 한 어르신이 “다시 젊어진다면 찐한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 그 시절에는 신랑 얼굴도 모르고 그저 결혼 날이 잡혀 시집가서 마냥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주어진 삶에 급급해 살아오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어. 이제 자유롭게 내 삶을 살아보려니 너무 늙어서 거들떠 봐주지도 않잖아? 좋은 감정 슬픈 감정 꾹꾹 참아내며 살아낸 시절이 참 억울해. 샘은 뜨겁게 사랑도 해보고, 가슴앓이도 해보며 재미나게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요.”라고 하신다.

그 곁의 어르신은 시인이 되고 싶으시단다. “먹고 사는 게 어려워 여자들은 학교 문턱도 못 밟아 봤어.” 이름 석 자 쓰는 걸 배우시곤 너무 기뻐하며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리시곤 “이게 내 인생이고 내 시다. 내 이름 석 자에 지난 세월의 아픔도 고뇌도 사랑도 추억도 다 녹아있다 아이가!” 하니 덩달아 “맞다. 맞다.”를 외치는데 가슴속 어딘가에서 뜨거움이 치밀어 올라온다.

70대 어르신이 나를 붙들고 한참을 토해 내신다. 얼마나 힘들게 가족을 지켜 오셨는지. 그런데 지나고 나니 병든 몸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원망만 남더란다. 그게 그리 마음이 아프시단다. “차라리 조금 덜 벌더라도 좀 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 내가 덜 외롭지 않겠냐?”고 물어 오시는데 나는 대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 마음이 어떠할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기에.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일을 쉬던 중, 낯선 장소를 방문했을 때 “누구세요?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참 막막했다. 당당히 내 이름 석 자를 대니 “그게 누구인데요?”라는 물음이 참 억울했다. 직함을 뺀 나는 누구며,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살았던가 돌아본다. “누구의 엄마, 아내, 자녀가 아닌 온전한 나는 누구일까?”를 고민하며 뒤늦은 사춘기 앓이를 했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지금도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걷고 있다. 매 순간 가슴이 뛰는 길을 성실히 걷다 보면, 그 언저리 어딘가에 다가가지 않을까? 종종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본다. 지금 이 순간 가지는 기분이 화남인지 슬픔인지? 무엇을 할 때 기쁘고 설레는지? 어떤 일이 네 가슴을 뛰게 하는지? 좋은 학교도 좋은 직업도 훌륭하지만, 내 감정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참 아픈 삶임을 알기에.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한순간이라도 따스한 위로가 되는 걸 보며 저절로 힘이 나는 걸 보면, 직업 하나는 참 잘 선택한 듯하다.

“대학 나와 기저귀나 갈려고 공부했냐?”는 말에 이십 대의 철없던 시절에는 그리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 삶의 매 순간에 마주하는 모든 일에는 배움이 있고, 마주한 순간의 모든 이들은 나의 스승이다. 지금도 매 순간 나 자신을 마주하며 물음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이경아 울산정주간보호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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