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범인을 잡다, 사랑을 잡다
영화 ‘헤어질 결심’-범인을 잡다, 사랑을 잡다
  • 이상길
  • 승인 2022.07.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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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그건 형사가 범인을 잡는 과정과 닮았다. 살인이든 뭐든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는 본능적으로 범인을 잡겠다는 강한 욕망에 휩싸인다.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반해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일종의 사건이라면 사건. 그 남자는 이제 여자를 갖겠다는, 그러니까 사랑을 잡겠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는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우선은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살피고, 그런 증거들을 토대로 용의자를 찾는다. 용의자가 나타나면 미행이나 잠복을 해가면서 그의 동태를 살핀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가 몹시 궁금하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나 그녀의 마음. 해서 남자는 우선 여자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는지 증거를 찾아 헤맨다. 그녀의 말과 행동들에서 증거를 찾기 시작하는 남자, 마음 같아서는 미행이나 잠복까지 감행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알고 싶어진다.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형사는 범인 체포에 나서게 되고, 그에게 수갑을 채우면서 수사는 종결된다. 그러면서 그 사건은 이제 형사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범인을 잡았으니까. 마침내 여자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을 하게 되고, 남자의 마음을 받아 준 여자의 손엔 이제 수갑이 채워진다. 마찬가지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수사는 사실상 종결된다. 그러면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관심도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을 훔쳐 간 범인을 잡았으니까.

그런데 형사에겐 미결 사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된 사건도 있는데 그런 미결 사건은 형사에게 계속 트라우마로 남곤 한다. 이 말인 즉은 형사의 관심도 계속된다는 뜻. 다시 말해 미결 사건은 형사에게 영원성이 부여되는데 비록 수사는 종결됐어도 새로운 증인이나 증거가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다시 수사가 시작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인 해준(박해일)에게도 미결 사건은 트라우마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결 사건에 대한 자료들을 자신의 집 한쪽 벽에 붙여 놓고는 커튼으로 가린 뒤 한번 씩 다시 꺼내 봤다. 범인을 못 잡았으니까. 그 즈음, 관할구역에서 변사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용의선상에 중국 여자인 서래(탕웨이)가 오른다. 서래는 죽은 남자의 아내였다.

헌데 해준은 용의자인 서래를 보자마자 반해 버린다. 해서 그는 수사를 빌미로 서래를 취조하고, 미행하며 집 근처에서 잠복까지 감행한다. 그가 찾는 건 범행증거. 바로 죽은 남편에 대한 살해 증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훔쳐 간 범죄의 증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래로서는 해준의 그런 의심과 수사가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서래 역시 해준에게 심하게 끌렸다. 여태 나쁜 놈들만 만났던 서래는 한국에 와서도 죽은 남편으로부터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는데 수사를 빌미로 자신을 알뜰살뜰하게 챙기는 해준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던 것. 참, 해준에겐 아내 정안(이정현)이 있었다. 결혼한 지 꽤 됐지만 정안은 사랑과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3번(미친..)은 꼭 하자고 닦달했고 해준은 거기에 의무적으로 맞춰주고 있었다. 그렇다. 아내 정안에 대한 해준의 수사는 종결된 지 오래 됐고, 그런 해준에게 서래는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진다.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결혼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일이고, 서로 ‘결혼할 결심’을 했다는 건, 거기까지 온 과정 자체가 이미 각자에게 전설로 남게 된다. 그리고 전설은 영원하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기 때문. 다만 그때 그 마음이 점점 탄력을 잃어가는 건 인간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 감히 꽃도 시드는데 말이지. 그렇게 사랑이란 것도 점점 형태가 변하기 마련. 시작할 때의 설렘과 흥분은 서로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차분해지고, 차분해지다보면 가끔 귀찮아지고, 그러다보면 드러누워 버린다.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다고요? 마음이란 게 노력한다고 좋아지던가요? 물론 척을 할 순 있겠죠. 아내 정안을 대하는 해준처럼. 허나 시들어도 꽃이다.

해서 여러 나쁜 놈들을 거치면서 똑똑해진 서래는 자신의 삶을 구해준 해준과는 처음부터 ‘헤어질 결심’을 한다. 미결 사건으로 남아 영원히 그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바로 이 영화의 결론인데 그러기 전 서래는 해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영원 속으로 숨어든다. 젠장, 사랑 참 어렵다. 마치 안개 같다. 갇히면 안개밖에 안 보이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 허망함이란. 씁. 2022년 6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38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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