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홀로 걷기’를 통해 익힌 친밀감
-221- ‘홀로 걷기’를 통해 익힌 친밀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0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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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먼저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친밀감이 커지면 그만큼 위험도 내포한다. 그런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경험이나 새로운 발견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의 보고(寶庫)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추하게 늙을지도 모른다. 친밀감이 커지면 상처받기도 쉽다. 그러나 이런 취약성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특히 오랜 친구와의 관계,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나를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친밀해지고 싶다.

시간은 무심하게 한없이 흘러간다. 무한히 흐르는 시간은 우리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들로 인해 간헐적으로 분절(分節)된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이고, 실천에는 게으른 편이다. 실패를 뻔히 알면서도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친밀함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유일한 종이다. 의미가 없는 삶은 허무하지 않은가. 우리 마음을 잠식한 허무함을 채우려는 시도는 때로는 물건을 계속 사들이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허무함을 채우려면 점점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일 수밖에 없다.

의미 있는 삶의 비결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며,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때 인생의 가장 풍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개방할 때에 가장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친밀함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이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누구나 서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 사랑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인간은 친밀함을 추구하도록 창조된 존재다. 친밀함에 대한 감탄과 경이감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나는 혼자 걷기를 좋아한다. 특히 새벽 산책을 즐긴다. 거의 매일 만오천 보 이상을 걷는다. 걷는 동안에 가질 수 있는 긴 침묵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 덕분에 거리를 두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다. 육체적인 모습에 대해선 만족한다. 잘 걷고 건강하며, 여간해선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내적인 모습을 보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마음의 습관을 자주 살펴보고, 건강한 생각은 발전시키고 독이 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아직 배우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홀로 걷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짧은 여행이다. 스스로 만든 갖가지 가면과 장막으로 가려진 참 자아(自我)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다.

시인 토마스는 “여행의 정점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꽃가루를 잔뜩 묻혀 왔으니 이제는 마음이 먹고 살 꿀을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걷기는 일종의 영성 훈련이다. 걷는 동안 일정한 시기마다 멈춘다. 뒤를 돌아보고, 걸어왔던 길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걷기란 곧 뒤를 돌아봄으로써 얻게 되는 관점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얻은 통찰을 내 삶에 적용해 보려고 애쓴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대신, “오늘 가능한 일들은 무엇일까?” 자문한다.

걷기를 통해 보다 심오한 관점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다. 걷다 보면 의식은 더 명료해지고 주변의 것들을 더욱 친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재빨리 지나치는 대신, 한가롭게 걸으면서 가깝게 다가가 열심히 관찰한다. 계속 변화하는 자연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하려면 자연을 아주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 아주 평범한 일이지만, 얼마나 친밀한 일인지 오늘도 자연을 통해 배우고 있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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