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계(鳳溪)·전읍(錢邑)·신전(薪田)
봉계(鳳溪)·전읍(錢邑)·신전(薪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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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화 재창조 사업인 ‘마을 이름 재창조(양산 대석, 울산 삼호, 북구 염포, 남구 마채 등)’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 마을 이름 재창조 사업은 현상 프레임보다 다양한 변화가 지역에 도움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울주군 두동·두서 면지(面誌)를 읽고 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신전(薪田)이란 마을 이름이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전읍 돈골을 순시하다가 열박재에서 잠깐 쉬면서 “숲이 많은 남쪽 저곳이 어디냐?”하고 묻자, 신하들이 “저곳은 숲이 많아 섶밭(薪田)이라 불리는 곳”이라고 답했다(두동면지. 2001. 신전마을 편). 《한위악부(漢魏樂府)》의 〈강남(江南)〉에는 “강남으로 연꽃 따러 가세!/ 연잎이 얼마나 전전하는가!(江南可採蓮 蓮葉何田田)”라고 했다. ‘연잎이 물 위에 가득 떠 있는 모양’을 ‘전전(田田)’으로 표현했다. 신전은 섶밭을 가꾸기보다 물이 풍부해 논농사 짓기에 좋은 마을이다. 많은 무논에서 어리연 잎이 동그란 동전 모양으로 수면을 수놓은 마을이 바로 신전이다.

다음은 봉계(鳳溪)란 마을 이름이다. “봉계리는 이 지방에 거주하던 강 씨들이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길하다는 ‘봉(鳳)’ 자에다, 강태공이 위수에 낚시를 드리운 옛일을 연상하는 ‘계(溪)’ 자를 붙여 지었다고 한다. 봉계 인근 지역에는 ‘닭’ 또는 ‘달’을 뜻하는 지명이 많다(두동면지. 2001. 봉계리 편).” 봉계에서 가까운 곳에 닭이나 달을 의미하는 지명이 많은 이유는 묵장산(781.2m)에서 흘러내린 많은 양의 물이 월평(상월평, 하월평)을 뒤덮다시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봉계에서 가까운 신전이란 지명과 관련되니 여왕의 행차를 그 근거로 삼았을 법도 하다. 왕이 행차하면 일산(日傘)인 봉개(鳳蓋)를 펴서 햇볕을 가린다. 열박재로 가려면 반드시 봉계를 지나야 한다. 봉계도 좋지만, 왕이 행차한 봉개에서 만나 멋진 추억을 만들면 어떻겠는가? 아마도 봉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현상의 봉계’보다 ‘정체성의 봉개’가 격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봉개를 펼쳐놓고 한우를 즐긴다면 그야말로 봉을 잡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전읍(錢邑)이다. “전읍리는 조선 초기에 ‘돈 마을’ 또는 ‘회은촌(回隱村)’이라 하던 곳이다(두서면지. 2001. 마을 내력 편).” 분석해보면, 회은촌은 ‘돌아서 숨은 마을’로 풀이되고, 이를 줄이면 ‘돈 마을’이 되며, 이것을 다시 한자로 바꾸면서 사실과 달리 엉뚱한 전읍(錢邑)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두서면지에는 “전읍(錢邑)은 신라 시대에 돈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돈 골’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한 고증 자료는 없다(2001. 마을 내력 편).”고 설명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河回村), 예천 회룡포(回龍浦), 울주 온산 회학마을(回鶴村), 울산 중구 다운동 등지의 ‘돈 골’ 지명은 본질적으로 남아 있다.

동전을 닮은 작은 어리연 잎과 큰 보름달 같은 연잎이 수면을 덮고 있는 소(沼)와 택(澤) 그리고 못의 풍경을 문학적 표현으로 전전(田田), 전당(錢塘) 또는 전읍(錢邑)이라 표현한다. 백운산(892.7m)과 아미산(603.6m)에서 흐르는 물은 전읍, 신전을 지나 유촌(柳村)에서 불어나고 대곡천으로 흘러든다. 신전(薪田)·구수(九藪)·요도(蓼島) 등 지명에 풀(艸)을 머리에 올려놓고 보면, 그 지역이 대부분 키 작은 식물이 넓게 펼쳐있는 습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구수(九藪)에서 구는 구룡지(九龍池)처럼 ‘아홉’을 일컫기도 하지만 ‘많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처럼 ‘마을 이름 재창조’ 프로젝트에 관심과 사랑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지역민의 굳은 마음으로 보면 쓸데없는 짓으로 비난받을 소지도 없지는 않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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