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녀2’-박훈정표 ‘마녀 시네마틱 유니버스’ 열리다
영화 ‘마녀2’-박훈정표 ‘마녀 시네마틱 유니버스’ 열리다
  • 이상길
  • 승인 2022.06.2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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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녀2'
영화 ‘마녀2'의 한 장면.

 

영화인으로서 박훈정 감독은 다소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천재 같은데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그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같은 명작의 각본을 쓰며 화려하게 충무로에 입성한 뒤 본인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신세계>로 천재성을 널리 알렸더랬다. 그러니까 영화계에선 드문 ‘싱어 송 라이터’로서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아 일찌감치 크게 성공한 셈.

헌데 2013년 <신세계> 이후 그의 행보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니 2015년 <대호>나 2017년 <브이아이피>까진 나름 괜찮았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두 작품 다 선이 굵은 묵직한 메시지로 감독 내면의 깊이를 아주 잘 보여줬던 것. 그러다 2018년 6월 드디어 <마녀>라는 작품을 접하게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시 난 <마녀>를 극장에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뭐야. 박훈정 감독, 이런 거에도 관심 있었어?”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했던 건 그 동안 그가 만들어온 작품들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며 묵직한 작품만을 만들어왔던 그였기에 특급 액션으로 무장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마녀>는 그 가벼움으로 인해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 분명 나만 그렇진 않았을 거다. 박훈정 감독하면 <신세계>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그 후로 5년만에 다시 <마녀2>를 내놓았고, 놀랍게도 영화의 가벼움은 전편을 능가해 버린다. 1편에 비해 더 다양해진 초능력자들의 등장으로 영화는 좀 더 산만해진 가운데 설명조차 부족해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그 속에서 간간히 터져 나오는 유머코드는 영화의 분위기와 화학적인 결합으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 지. 만. 이 영화의 액션만큼은 전편에 비해 훨씬 무겁더라. 아니 우리나라 영화에선 여태 구현된 적이 없었던 액션을 보여주는데 흡사 그건 2013년 6월 개봉해 액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을 보는 듯 했다. 서사 구조도 <맨 오브 스틸>의 주인공인 슈퍼맨 이야기와 비슷한데 슈퍼맨(헨리 카빌)이 외계에서 미국 한 농장에 떨어져 켄트(케빈 코스트너) 부부에 의해 길러졌다면 <마녀2>의 주인공인 소녀(신시아)는 연구소를 탈출한 뒤 제주도 어느 한 농장에서 어린 남매의 보살핌(?)을 받게 됐던 것. 그리고 염력까지 쓸 줄 아는 소녀의 힘은 거의 슈퍼맨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엄청났는데 한국 영화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고강도 액션을 계속 보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1편을 볼 땐 몰랐는데 이 사람(박훈정 감독),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를 넘보는구나.’ 그러니까 박훈정 감독의 <마녀>시리즈가 이젠 한국 영화로선 하나의 도전으로 보였던 것. 심지어 극장을 빠져나올 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이 너무도 막강해서 마블의 ‘어벤져스’팀과도 한번 붙어 볼만도 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랬거나 말거나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옛 이야기를 예고했던 <신세계> 2편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마녀>시리즈는 일종의 뜬금포이거나 일탈과 같은 셈. 해서 언제까지 삐뚤어질 건지 가늠하기 위해 박훈정 감독에 대해 조금 알아보게 됐더랬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가 이해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담배도 피웠다는 박훈정 감독은 공부는 또 잘해서 의대를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적성에 안 맞아 몇 차례 유급을 당한 뒤 입대를 하게 됐는데 특이하게 하사관 지원을 해서 중사 제대를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대학에선 완전히 제적을 당하게 됐는데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방황할 새도 없이 바로 영화판에 입성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던 것. 학창 시절 시내 뒷골목에서 친구들과 같이 담배를 피다 우연히 본 동시상영 극장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태어나 처음 만난 거대한 스크린에 매료되면서 마음 속에선 이미 ‘길’이 정해져버렸던 것이다. 초창기엔 먹고 살기 위해 게임 시나리오나 무협 만화 스토리도 병행해서 썼었는데 그러다 틈틈히 써서 완성한 뒤 영화사에 돌린 시나리오가 바로 김지운 감독의 2010년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그 시나리오로 인해 당시 충무로에선 “천재 작가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후 <부당거래>를 거쳐 <신세계>는 직접 메가폰까지 잡아 큰 성공을 거뒀다.

이쯤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하. <마녀>시리즈는 먹고 살기 위해 게임 시나리오나 무협 만화 스토리까지 썼던 박 감독이 만들고 싶었던 작품, 그러니까 하고 싶었던 일이었구나.’ 그럼 뭐 더 이상 할 말 없지. 해서 난 박훈정표 ‘마녀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열린 김에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자료를 다 뒤져본 후에서야 말이다. 확실히 사람은 알아봐야 알 수 있다. 그래도 다만 이 한 마디는 꼭 그에게 하고 싶다. “감독님, 슈퍼히어로도 좋은데 <신세계> 2편은 언제 만들거예요? 정청이랑 이자성, 이중구, 강 과장, 다 보고 싶다구요!”

2022년 6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37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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