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진 봄
꿀벌이 사라진 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2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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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필독서 중에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 있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에 펴낸 이 책은 살충제·제초제와 같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을 경고한 책이다. 이 책은 모든 생명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가축과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다 죽어가는 상황에 놓이고, 아름다운 새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봄을 맞이하는 ‘내일을 위한 우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수집한 무분별한 농약사용 피해 사례들과 다양한 과학적 분석결과들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본문에 서술했다.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이후 미국 사회 환경운동의 원동력이 됨과 동시에 다양한 환경정책의 발전을 이끌었다. 타임지는 레이첼 카슨을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의 1명으로 선정했다.

올해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지난봄도 많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고, 새로 올라오는 여린 잎들은 꼭 안아주고 싶도록 아련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꽃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꿀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그 많던 꿀벌들은 어디로 갔을까? 꿀벌들이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생전에 “만약 지구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만에 멸망할 것이다(If the bee disappeared off the surface of the globe, then man would have only four years of life left).”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일까?

생태계 분류에서 식물은 ‘생산자’로 분류된다. 물과 이산화탄소, 각종 미량 무기물과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유기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개체 수를 늘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열매식물들은 수분(受粉=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로 옮기는 과정, 꽃가루받이)을 통해 씨앗들을 만들고, 이 씨앗들이 새로운 싹을 틔워 개체 수를 증가시킨다. 꿀벌들은 꿀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꽃가루를 묻혀 암술에 전달한다.

꿀벌들의 엄청난 활동량과 개체 수를 생각하면, 이들이 전 지구적 생태계 서비스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꿀벌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 인간을 포함해 많은 동물들의 먹이인 열매의 생산량이 줄게 되고, 나아가 열매식물의 개체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열매식물 재배 농가들의 소득 감소에 더해 생태계 전반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태계에 나쁜 ‘나비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앞에서 언급한 말 뒤에 “벌이 없다면 수분 과정이 없어 더이상 식물이 없고, 동물과 인간도 없다(No more bees, no more pollination, no more plants, no more animal, no more man)”는 말을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꿀벌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다. 2006년부터 미국에서 꿀벌의 집단 폐사가 보고된 이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도 꿀벌의 집단 폐사가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꿀벌들이 급격히 사라지는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살충제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가장 믿을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겨울 월동 중이던 꿀벌 가운데 39만 봉군(벌통)에서 살던 78억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정확하게는 ‘실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원인과는 달리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겨울철 벌통 안에서 월동을 해야 하는 벌들이 이상고온 때문에 외부활동을 하다가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으로 인해 다시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는 새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봄을 맞이했지만, 우리는 꿀벌의 바쁜 날갯짓 소리가 사라진 봄을 맞이했다. 꿀벌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곤충에 지나지 않겠지만 생태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대체불가의 존재다. 지구는 계속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폭염, 산불, 홍수, 멸종 생물의 증가와 벌의 실종 등을 통해…. 이제는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지속성을 위해 이 경고 메시지들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후-환경친화적 사회로 전환하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마영일 울산연구원 시민행복연구실 연구위원,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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