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박우리와 함자영, 구자경(구씨)과 염미정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박우리와 함자영, 구자경(구씨)과 염미정
  • 이상길
  • 승인 2022.06.16 20: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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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의 한 장면.

연애와 관련해 여자들이 남자들에 대해 자주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남녀가 처음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서로에게 끌린 둘은 아주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된다. 특히 남자는 깨지기 쉬운 얇은 유리잔을 손에 쥔 것처럼 여자를 극도로 소중하게 대한다. 사랑하니까. 남자니까. 그래야 여자의 마음이 좀 더 열리니까. 아무튼 온 마음을 다해 잘해주는 남자의 진심 앞에 마침내 여자는 마음을 열게 되고, 둘은 이내 뜨거운 사이가 된다.

자. 그럼 이제 뭐할까? 뭐하긴 뭐해. 자야지. 물론 남자가 먼저 들이댄다. 몸을 준다는 건 부끄러우면서도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여자는 잠시 주저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그가 원하는 일이기에 여자도 결국 허락한다. 허나 처음이 큰일이지 한번 자고 나면 둘은 계속 자게 된다. 그러다보면 여자 역시 몸을 섞는 일에 익숙해지게 되고, 몸을 섞다보니 마음은 더욱 그에게 치우친다.

반면 그때부터 남자는 조금씩 무뎌진다. 그러니까 신비감이 사라진 여자의 마음이 자신에게 너무 치우쳐져 있음을 알게 된 남자의 텐션(긴장감)은 극도로 약해지고, 그때부터 여유를 부리기 시작한다. 한눈도 판다. 그러다 들켜 크게 싸우거나 그냥 그 사랑 자체가 지쳐버리면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여자 입장에선 그렇다. 지(남자)가 먼저 시작해놓고. 그렇게 좋다고, 또 사랑한다고 해놓고는. 그렇다. 여자에게 남자는 이제 ‘가짜’, 즉 ‘개새끼’가 된다.

헌데 이 지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건 결혼까진 제쳐두고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정석적인 코스를 밟은 커플인데도 남자는 결국 개새끼가 되고 말았다는 것. 하긴, 이 커플 역시 뜨거웠던 시절에 여자는 그냥 남자의 품에 안겨서 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남자는 보통 싸고 나야 잠이 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쩌겠나. 그런 남자의 욕구가 없었으면 인류는 벌써 대가 끊겨 절멸했을걸. 뭐. 그걸 이해한다 해도 여자에게 있어 감정적으로 개새끼는 개새끼. 해서 <연애 빠진 로맨스>는 이 과정을 역순으로 한번 가보자고 한다. 무슨 말이냐면 연애 과정을 생략한 체 처음 만나자마자 로맨스(섹스)부터 시작한 남녀의 관계를 한번 들여다보자는 것.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분명 그래서였을 거다. 이 영화는 아예 남녀 주인공 이름부터 적나라하게 지어버린다. 남자주인공인 박우리(손석구)는 잡지사 칼럼리스트로 편집장은 그를 부를 때 “빠구리씨!”라고 한다. 그리고는 잡지는 무조건 재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똘끼 가득한 글이 나와야 한다면서 섹스 칼럼을 연재하라고 우리를 압박한다.

한편 여자주인공인 함자영(전종서)은 감정소비가 심한 연애에 많이 데여서 지금은 이름처럼 로맨스(섹스)만을 원하고 있다. 그러니까 속 시끄러운 연애는 싫은데 섹스는 고픈 셈. 그러다 데이트 앱을 통해 우리를 만나게 됐고, 첫 만남에서 바로 모텔로 향한다. 자영이란 캐릭터가 어느 정도로 쿨하냐면 모텔로 향하기 전 냉면에 소주 한잔하면서 자영이 우리에게 말한다. “백마 탄 왕자가 온다 해도, XX가 작으면 끝이죠.” 그렇다. 요즘 손석구가 대세지만 이 영화에선 전종서 매력 쩐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화, 끝으로 갈수록 점점 이상해진다. 가볍게 만나 섹스만 즐기던 우리와 자영이었지만 서로 마음까지 주기 시작하더니 앞서 말한 정석 커플의 처음 모습으로 변해가더라는 것. 하긴, 이안 감독의 <색, 계>에서 왕 치아즈(탕웨이)도 민족의 적으로 응징을 위해 접근한 이 대장(양조위)과 계속 몸을 섞다 사랑하게 되더라. 그렇다면 이 타이밍에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자영에게 우리도 ‘진짜’가 됐는데 정석 커플에서 그 남자, 설마 가짜였을까?” 당연히 아니지! 단언컨데 한 순간이라도 진심이면 진짜다. 그런데 왜 개새끼로 변했냐고요? 흠. 그건 그냥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 바뀐 별자리 같은 게 아닐는지. 그러니까 그 이유는 별자리에게 물어보시길. 왜 변하는지.

다만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는 일찍이 출세작인 <또 오해영>에서 주인공 도경(에릭)의 아버지(이필모) 입을 통해 이런 조언을 건네긴했었다. “사라지는 거 인정하면 엄한데 힘주고 살지 않아.” 또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손석구)는 3년 만에 다시 만나 제대로 된 연애를 막 시작하려는 미정(김지원)에게 난데없이 이렇게 고백한다. “염미정! 이것만은 알아둬라. 내가 나중에 개, 개, 개, 개, 개, 개새끼가 되더라도 나 너 진짜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가 아니라 “좋아했다’고? 어쩌면 자신도 별자리가 바뀌는 건 막을 수 없음을 미리 알기 때문이 아닐까. 아울러 “좋아했다”는 건 미정을 만나기 전, 같이 살면서 사랑을 갈망하다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녀에게도 하는 말이 아닐는지. 그러니 앞으로 남자들은 구씨처럼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고백해보는 게 어떨까. 결혼까지 안 할 거면 언젠가 ‘가짜’ 혹은 ‘개새끼’로 전락할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오늘 왜 이러냐고요? 나도 구씨처럼 ‘투명’한 척 한번 해보는 거죠. 또 오천년 묵은 여자들의 한(恨)도 조금 위로해줄 겸. 그렇다고 여자들은 너무 반기진 마시길. ‘개새끼’가 있으면 ‘썅년’도 있으니까. 훗. 2021년 11월 24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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