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25일의 울산 태화강
2009년 6월25일의 울산 태화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6.24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주말 폭우가 쏟아지더니 며칠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가뭄에 속을 태우던 농부들이 그 비 덕택에 모내기를 끝낼 수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달 탐사선을 띄워 보내는 인간도 자연의 위력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땡볕으로 인간을 질타하던 하늘이 비를 내리자 무력한 땅위의 존재들이 연신 미소를 짓는 걸 보면 1950년 당시의 인간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불볕더위가 며칠 이어졌고 한강물이 불어 국군의 후퇴작전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전쟁 때부터 수많은 인간들이 울산을 거쳐 사라졌지만 2009년 6월25일 울산 태화강은 두 가지를 잊지 않고 있다.

최전선 지역에 인접해 있는 후방 보급기지가 접전지대보다 오히려 더 괴롭다는 사실을 태화강은 알고 있다. 국가행정이 마비된 전쟁 통에 그나마 징병할 수 있던 곳은 적의 미점령지역, 즉 동부전선 쪽으로는 울산, 경주가 청장년을 데려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경주 북방 안강·기계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상당수가 울산 출신이다. 하지만 그 소년병들의 일부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합동 위령제로 대신하고 있다 한다. 그들의 한을 태화강은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6월25일 푸른 울산을 호흡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그들의 죽음조차 망각해 버렸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다 못해 조국 수호자들을 ‘조국통일 방해자’라 폄하하는 일마저 생겨도 누구 하나 반박하려 들지 않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권력세습을 거듭해도 북쪽은 민족 정통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정작 자신들이 몸붙여 살아 왔던 곳은 정체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후손들을 보면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그 날의 소년병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태화강은 그 혼령의 훈계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후손들에게 울산 출신 학도병들의 영령은 이렇게 말 하고 있다. “ 또 다시 59년이 지나 하늘에서 조국을 보면 너희들의 주장이 한 줄기 소나기보다도 못함을 알게 된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