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핸드폰 이름은 마음에 드나요?
당신 핸드폰 이름은 마음에 드나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0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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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족 소통지수를 확인하고 싶다면, 재주껏 아들이나 딸의 핸드폰에 입력된 자신의 이름부터 알아내면 된다. 어른들이 불합리하고 억압적이라는 불만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마음의 벽부터 쌓는다. 소통은 그것으로 끝이다. 소통 부재의 불씨는 십중팔구 학업 성적이다. 어른 세대는 자신이 다니던 수십 년 전 학창시절의 눈높이로 자녀들을 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내 자식을 대하는 사고가 그 시절 과거에 그대로 고정된 것이다. 급기야 “나 때는 말이야”라는 절대 금기(禁忌)까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자식의 눈에 이른바 ‘꼰대’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다. 휴대폰에 가족의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상대방 이름을 어떻게 저장하는지에 대해 학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물었다. 학부모의 경우, 대부분 자녀 이름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사랑이 듬뿍 담긴 수식어나 애칭 등을 사용해 색다르게 저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 공주’, ‘로또’, ‘보물’ 등과 같은 단어로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하거나, 이름 앞에 ‘예쁜’, ‘사랑하는’, ‘금쪽같은’ 수식어를 붙여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사랑의 하트(♡) 이모티콘도 빠짐없이 등장했고, 자녀 양육에 돈이 많이 든다고 ‘돈덩어리’로 자녀에 대한 애정을 재미있게 표현한 부모도 있었다.

자녀들 역시 휴대폰에 부모님 성함을 있는 그대로 입력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주로 애칭이나 엄마 아빠의 특징을 십분 활용한 개성 넘치는 표현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어마마마, 아바마마’와 ‘엄마 곰, 아빠 곰’ 등과 같은 별명은 흔한 편이었고, 빵을 잘 구워 주는 아빠를 ‘아빵’이라는 기발한 애칭으로 저장한 경우가 눈길을 끌었다. 문득 부부간에는 휴대폰에 어떻게 저장할까 궁금해진다. 결혼 초에는 대개 달달한 닉네임이나 이름을 풀어쓰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거칠어지며 약점을 찾아 민망하게 변해가는 건 아닌지. 그래도 자식 이름을 앞에 붙여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가장 많을 듯하다. 그에 못지않게 ‘웬수’, ‘남의 편’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여러분 자녀가 자신을 달랑 이름으로만 저장해 놓은 걸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어떤 엄마는 아이 휴대폰에 ‘사랑하는 엄마’라고 본인이 직접 입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삼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간결한 수단이다. 이름 석 자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왜 우리는 상대방을 이름 대신 다른 어휘로 저장하려 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한 사람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보기보다, 자신과 어떤 관계로 어떤 교감을 주고받았는가에 의해 바라보고 기억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즘은 궁금한 게 참 많다. ‘봤을까?/날 알아봤을까?’ 세월이 흘러 서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이 시의 주인공은 상대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날 알아봤을까, 못 알아봤을까? 생각할수록 설레고 궁금해진다. 단 두 줄로 호기심과 궁금증의 묘미(妙味)를 극점까지 밀어올린 기막힌 시, 유안진 시인의 ‘옛날 애인’이다. 한때 사귀다가 갈라선 애인을 우연히 마주친다면 머쓱하고 어색하다. 서로 알아보고 목례 정도 나누고 지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우아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만나 지나친 경우 생각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그 사람이 봤다면 과연 알아봤을까? 사랑의 감정은 비록 사라졌지만, 관심은 여전히 살아있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단 두 마디로 정리했다.

또 궁금해진다. 만약 하느님이 휴대폰을 갖고 계신다면, 나는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이름이 저장되어 있을지 또한 궁금하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기왕이면 ‘겸손한, 기특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으면 좋겠다. 사람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욕심이 과한 듯하나, 매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좀 더 부지런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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