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변화
언어의 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2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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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시대와 함께 조금씩 변화한다. 한·중·일 모두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언어는 안간힘을 쓴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경어와 호칭어이다.

경어는 어느 언어에나 존재한다. 그 언어형식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일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경어법은 대화의 주체인 인물이나 대화의 청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즉 인물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도 우리와 흡사한 경어체계를 갖고 있다. 더욱이 한·일 모두 상대에 대한 높임말뿐 아니라 자신 또는 자신의 행동은 낮추어 말하는 겸양어의 역할이 한몫한다. 다만 한국어의 경우는 어휘적인 수준에 그치는 데 비해 일본어의 겸양어는 복잡하고 여러 형식으로 다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한일 모두 경어의 과대 포장이 문제시된다. 한국에서는 접객 경어에서 사물을 존대하는 경향이 여기에 속한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한 후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고객님, 우리 매장에는 M 사이즈는 없으세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는다. 본래 ‘선생님께서는 오전에 나오셨습니다.’와 같이 화제에 오른 인물에 대해 존경의 선어말어미 ‘-시-’를 써야 하지만 그것이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에 대해 최대의 높임말을 사용하는 풍습이 어느 사이엔가 꽤 정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중 경어’, ‘과잉 경어’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이러한 현상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매뉴얼 경어’라고 하여 각종 상점이나 기업에서 고객을 위한 경어 사용이 매뉴얼화되어 있다. 그도 그럴 법하다. 일본의 경어체계는 매우 복잡하여 대학생이 취업 면접을 앞두고 맹훈련을 거쳐야 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일본에서의 경어는 교양의 척도이다.

한국에서 ‘사물 존칭’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입장과 긍정적인 입장이 혼재한다. 국립국어연구원의 2015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물 존칭에 대해서 ‘자연스럽지 못하다’가 64.7%, ‘상대방을 높이는 표현이라 볼 수 없다’가 55.6% 를 차지하고 있어 사물 존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미 한국어의 접객 장면에서 정착되어 있다’, ‘손님을 높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손님을 높이는 표현으로 오용은 아니다’라는 긍정적인 입장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떤 언어정책이 필요할까? 이에 관한 해결책은 쉽지 않다. 다만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접객 경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또한 사물 존칭에서 보이는 문법적인 요소도 그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것은 그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문법적인 변화가 후일에 와서 인정받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를테면 1980년대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 제목의 ‘말아요’가 문법적인 오류로 여겨왔으나 2015년에 인정받게 된 경우가 그 예이다. ‘사물 존칭’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일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쉽사리 접객 경어에서 없어지지 않을 듯하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어에서도 점차 새로운 시대를 맞아, 겸양어의 사용은 줄어들고 그 대신 사양을 하거나 인사말로 건네는 정형적인 표현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이는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식당 등의 업소에서 점원을 부르는 호칭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친족관계가 아니지만 친족명이 사용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식당 등에서 ‘이모님’이라는 호칭 역시 중국에서도 쓰인다. 하지만 점차 ‘?好(안녕하세요)’를 사용하는 것이 교양 있는 중국인들의 새로운 호칭 방식이 되고 있다. 일본도 점원을 부르는 호칭은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이 이미 정착한 지 오래다. 이런 맥락에서는 영어의 ‘Excuse me’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여기요.’ ‘저기요.’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대해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배달문화, 결제시스템 등 편리시설은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에 비해 언어의 대응능력은 매우 느리다. 이 때문에 서비스업계에서 겪는 불편함도 꽤 누적되고 있다. 언어도 시대의 변화에 순조롭게 발맞춰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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