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호
선거구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24 2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1 지방선거 열기가 모처럼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다. 초여름 날씨 탓만은 아닐 게다. 그렇다고 사이다 같은 시원한 소식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해서 길거리 선거용 벽보와 현수막들을 눈여겨보았다.

선거구호는 거의 하나같이 주상복합건물을 보는 느낌이다. 단체장·지방의원 후보든 교육감 후보든 큰 차이가 없다. 색상도 대부분 홍(紅)·청(靑) 일색이다. 정당과는 거리가 먼 교육감 후보는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바탕색이 진보는 녹색, 보수는 붉은색으로 차이가 뚜렷하다.

고심작으로 어떤 구호들을 내놓았을까. 시장 후보부터 보자. “격이 다릅니다”(송철호 후보) 대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김두겸 후보)이다. 한술 더 뜨자면 ‘폭력 대 풍력’과 ‘울산을 울산답게’도 있다. 전자는 무슨 뜻인지,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면 교육감 후보는? “공약이행률 95.1%/ 교육은 노옥희”(노옥희 후보) 대 “보수단일 교육감 후보/ 울산교육 다시, 바르게”(김주홍 후보)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랄까, 옛날식 4-4조(혹은 4-3조) 선거구호가 시야에 잡히기도 한다. “일 잘하는-청년일꾼/ 당선시켜-부려먹자”라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수가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이다.

요즘 선거구호가 각을 세운 직선형 주상복합 분위기라면 옛날식 선거구호는 감성적 곡선형 초가(草家) 분위기였다. 구호가 곧바로 가슴에 와 닿았다는 얘기다. 자유당이 집권하던 내 어린 시절이 특히 그랬다. 타임머신을 타고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본다.

“묵고 보자 김OO” “술내 난다 하△△” “주지 넓다 임□□”…. 기억으로는 민의원(국회의원) 선거 때 부산시 부산진구(현 수영구+남구) 출마자들에게 따라다니던 일종의 ‘네거티브 구호’들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주지’는 ‘주둥이’의 경상도 사투리로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 무렵 기업인 김OO 후보와 양조장 사장 하△△ 후보는 엄청난 부자였고, 독립운동가 출신 임□□ 후보는 가난을 훈장처럼 달고 살던 인물이었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란 말도 이때를 전후해서 나온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보다 한 수 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선거구호도 있었다. 그 무렵은 자유당의 상징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재집권을 겨냥하던 시기였다. “못 살겠다-갈아보자!”(신익희-장면을 정·부통령 후보로 낸 민주당의 구호) “갈아봤자-더 못산다.”(자유당 ‘애국청년’의 구호). 뒤져보니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거리에 나붙은 벽보 구호들이다. 자유당은 이런 구호도 내걸었다. “계속하자 통일까지/하던 건설 마저 하자” 4-4조 틀에서는 벗어나도 ‘참전전우회 서울지부’란 단체는 ‘李飛御天歌(이비어천가)’ 성격의 구호를 승부수로 띄웠다. “우리의 총재-반공의 상징/민족의 태양/리승만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였다.

1950년대 선거구호 중에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환되는 구호가 있다. 국어사전에도 오른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비유적 구호가 바로 그것. 뜻풀이는 ‘무슨 일이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잘 한다는 말’이다. 충북 괴산군수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민주당 후보 지지자 A씨가 지난 19일 전통시장 구석에서 꺼낸 말로, 이 때문에 한바탕 설전이 불붙었다. 국민의힘 후보 지지자 B씨가 “정권을 따라 군수도 바꿔야 한다”고 받아친 것이다.

하지만 울산에서는 아직 그런 일로 입씨름이 붙었다는 소문은 아직 듣지 못했다. 몰라서 그런 건지 반발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 정답은 가르쳐 주는 이가 없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