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업 하는 날
공개수업 하는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2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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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필자의 첫 공개수업은 사기였다. 학교로 발령받고 두 달 정도 지나니 공개수업을 해야 했다.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자세히 시나리오(세안)를 짰다. 아이들과 미리 예행연습도 했다. 발표할 학생들도 정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5분쯤 지나 같은 교과 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들어왔던 것 같다. 참관 선생님들은 학습목표는 칠판에 썼는지, 아이들과 함께 학습목표를 확인하는지 등이 빼곡하게 적힌 체크리스트에 체크를 했다.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슬그머니 나가는 분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참관한 선생님들이 필자의 수업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수업시간에 잘못했던 점을 말하고 공개수업은 끝이 났다.

학교는 다른 사회 조직보다 개인의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수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교사의 전문적인 영역이라 그런지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 ‘잘한다, 못한다’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복도를 지나갈 때 다른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다면 애써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고 지나가곤 한다. 학교의 독특한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생님들끼리 수업을 공개하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한다. 보여주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다소 민망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공무원인 교사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무슨 비밀 임무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업시간에 엉뚱한 장난을 치는 녀석들, 이따금 터지는 ‘버럭’ 등을 보여주는 것은 마치 청소가 안 된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된 집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듯이 깨끗하게 정돈된 수업에 다른 선생님들을 초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수업을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수업을 보여주는 것은 수업을 평가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업을 보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 모두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평소의 수업을 보여주고 거기서 서로 보고 배운 것을 나누는 방향으로 공개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확산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조금씩 열리고 있던 교실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공개수업도 제한하고 e-학습터 수업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코로나 이후 학교에 부임하는 선생님들은 처음부터 이런 문화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 이런저런 사정으로 새로 부임한 선생님들의 학교 적응을 도와주는 멘토 활동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과 학교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수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멘토인 필자의 수업을 참관하기로 했다.

수업 직전에 선생님들과 사전 협의회를 가졌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은 어떤 것이고, 참관할 반의 아이들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의도로 수업을 설계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업자의 수업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참관하는 선생님들은 수업자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수업은 아이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꽤 괜찮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협의회를 진행했다. 협의회를 마치고 두 번째 수업을 공개했다. 두 번째 수업은 완전히 망했다.

필자의 수업은 학생들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학생들의 생각을 연결해가며 진행한다. 어떤 질문으로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진행이 잘 안 되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이들의 발표에 담긴 의미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로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한참 동안 제자리를 뱅글뱅글 맴돌았던 것 같다. 수업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예전의 수업 협의회였다면 필자가 실수했던 부분들, 아쉬웠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 공개수업은 수업자와 참관자 모두의 수업을 공개하려는 의지를 꺾어버리게 된다. 그 누구도 완벽한 수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후 협의회에서는 수업을 참관하며 인상적이었던 부분과 참관 선생님이 배운 점이 무엇인지 모두 돌아가며 발언했다. 그리고 수업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좋은 수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누었다. 꽤 늦은 시간까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참관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 학교에 출근한 뒤로 가장 보람찬 날이라고 하셨다. 매끄럽게 진행된 수업은 아니었지만, 수업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 조금씩 자랄 수 있는 공개수업이었던 모양이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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