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밀리맨’-행복 ‘그것’, 행복 ‘저것’, 행복 ‘이것’
영화 ‘패밀리맨’-행복 ‘그것’, 행복 ‘저것’, 행복 ‘이것’
  • 이상길
  • 승인 2022.05.1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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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밀리맨'의 한 장면.
영화 '패밀리맨'의 한 장면.

‘행복’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 ‘기분’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한때는 ‘행복=성공’, 즉 성공을 해서 지위가 높아지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랬다. 달리 말해 내가 뜻한 목표를 달성해야만 비로소 행복이라는 걸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나름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데다 이제 반백 살을 앞두고 있다 보니 행복의 크기보다는 ‘횟수’가 더 중요해졌다. 왜? 하루하루 산다는 건 곧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해서 시간은 돈과 달리 수입이 없는 만큼 요즘은 기분이 좋으면 행복한 걸로 생각하면서 산다. 그 덕에 흐렸던 날씨가 좋아지거나 길가에 핀 풀 한포기, 혹은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가끔 행복을 느낀다. 돈 타령은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하지만. 피식.

헌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게 무언가를 이루거나 쟁취했을 때만 발생한다는 입장도 결국은 기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개고생을 해서 소위 성공이란 걸 해도 좋아지는 건 결국 기분이다. 다시 말해 성공을 해도 영원히 살순 없으며 영화 속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슈퍼히어로가 되거나 최악의 빌런(악당)이 되어 지구를 정복할 수도 없다. 단지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물론 가진 게 많아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지지만 그것 역시 결국은 자기 기분 좋으라고 하는 짓이다. 맞잖아? 안 그래? 그쵸? 그렇잖아요? 그런 줄 알고 있겠어요. 히히.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게 된다. 우주에 웜홀(Wormhole,지름길)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행복에는 분명 웜홀이 존재한다는 것. 행복의 종착역이 모조리 기분으로 귀결된다면 행복해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 웜홀이 존재하기 때문. 몇 년 간 죽을 고생을 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과 성공과는 관계없는 어떤 사람이 그저 날씨가 좋아 느끼는 행복감이 과연 크게 다를까. 물론 전자의 경우 성취감이란 게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 기분이다. 또 후자처럼 영원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후자는 너무 쉽게 행복을 느껴버렸다. 전자 입장에선 왠지 억울하지 않을까. 별 노력 없이 행복을 느꼈으니. 하지만 어쩌겠나. 우주에 웜홀이 있을 수 있듯 행복에도 웜홀이 존재하는데. 다만 후자는 그걸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 <패밀리맨>은 주인공 잭(니콜라스 케이지)이 다중우주(평행우주)를 경험하며 이런 행복의 웜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지금 잭은 미국 뉴욕 월가를 주름잡는 성공한 금융가로 고급 펜트하우스와 페라리, 또 수시로 늘씬한 여자들을 바꿔가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지만 13년 전 그에겐 케이트(티아 레오니)라는 아주 많이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뒤 금융가로서 성공을 꿈꿨던 잭에게 기회가 찾아오면서 잠시 떨어져 지냈다가 둘은 영영 이별하게 됐다. 유명 금융회사 인턴으로 뽑혀 잭이 영국 런던으로 떠나게 됐던 것. 해서 영화가 시작되면 미국 케네디 공항에서 케이트가 잭을 배웅하는 장면부터 나오는데 성공을 위해 떠나려는 잭을 잡으면서 케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멋진 일이 뭔지 알아? 그깟 계획 말고 지금 당장 우리 인생을 시작하는 거야. 어떤 인생이 될는지 몰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인생 말이야. 난 우리를 택할래.” 하지만 잭은 성공을 향한 멋진 계획을 실행하러 가버리고, 둘은 영영 헤어진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잭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까 13년 전 공항에서 케이트의 말을 듣고 영국행이 아닌 케이트를 선택한 우주 속의 자신을 경험하게 됐던 것. 물론 그 세상에선 고급 펜트하우스도, 페라리도, 이름 모를 늘씬한 여자들도 없었다. 대신 아주 많이 사랑했던 케이트는 물론 그녀와 자신 사이에 태어난 예쁜 두 아이가 있었고, 서로를 아껴주는 이웃사촌들이 있었다. 그리고 늘 보는 그들의 미소 속에 행복은 이미 있었다. 성공을 해야지만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렇게 잭은 아주 먼 우주에서 행복의 웜홀을 찾았던 거다.

사실 행복이 기분이라고 해도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있거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 앞에선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땐 어떡하냐고요? 죄송한데 제 코가 석자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패밀리맨>은 관객들에게 결국 이런 조언을 던진다. “당신에게 행복은 여전히 ‘그것’인가요? 어떡해요. 아직 행복의 웜홀 근처에도 못 가셨군요. 그럼 ‘저것’이라고요? 마찬가지예요. 아니 잠깐! ‘이것’이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그것’말이죠? 드디어 웜홀을 찾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2000년 12월 30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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