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떼까마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16 2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향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았던 곳이다. 자라면서 학업, 취업, 결혼, 사업 등의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먹고살려고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떠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네 사람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야반도주(夜半逃走)하는 일도 있다. ‘여우도 죽으면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首丘初心)’는 속담이 있듯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원천이다.

최호는 〈황학루(黃鶴樓)〉에서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인가(日暮鄕關何處是) 안개 낀 장강 언덕에서 시름겨워 하노라(煙波江上使人愁)’라고 읊었다. 가수 남상규는 〈고향의 강〉을 통해 아련한 고향의 추억을 되살린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속의 강/… 진달래 곱게 피는 봄날에는/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갈대가 흐느끼는/ 가을밤에 울리고/ 떠나가더니/ 눈감으면 떠오르는…”

가수 박재홍은 〈유정천리〉를 통해 고향의 포근함을 그리워한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 드네.” 가수 백년설은 <고향설〉을 통해 타향살이하는 청년의 푸념을 전한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일세/ 끝없이 쏟아지는 모란 눈 속에/ 고향을 불러보니 고향을 불러보니/ 가슴 아프다.” 가수 김상진은 고향 사투리가 정겨운 아줌마를 통해 타향에서 향수에 젖는다. “들어찬 목로주점 나그네마다/ 넋두리 하소연에 푸념도 많아/ 내 고향 사투리에 고향 아줌마/ 나그네 인생길에 불빛만 섧다/ 불빛만 섧다.”

겨울에 숨었다가 봄이 되면 나타나 태화강을 나는 제비를 만날 즈음이면 삼호대숲이 술렁거린다. 겨울 한 철 검은 깃이 잠자리를 비우고 북쪽으로 떠나자 흰 깃이 남쪽에서 올라와 파시(波市=한시적 시장)를 연다. 그 속에 폐의(?衣=낡고 해어진 옷)의 검은 깃을 허우적거리듯 펄럭이는 늙은 떼까마귀 대여섯 마리가 뉘처럼 보인다.

백팔십여 일을 함께한 동료들은 벚꽃이 피기 전부터 둥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노쇠하고 병들어 몇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사코 손사래 치는 나를 그들은 몇 번이고 뒤돌아보다 떠났다. 그 후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온통 흰 깃의 백로뿐이다. 그들은 남루한 검은 깃의 나를 힐끗 쳐다볼 뿐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고함만 지른다.

그들의 예리한 부리가 무서워 가슴이 쿵쿵거린다. 이대로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태화강 건너편 벚나무 가지에 어설프게 앉는다. 바라보는 건 그리운 북쪽 하늘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매일 백로들의 등쌀에 시달리다 힘겨운 날갯짓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늙은 떼까마귀의 일상을 떠올린 글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표현과 겹쳐 보기에 안쓰러웠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마지막으로 보았던 늙은 떼까마귀 다섯 마리가 보름이 지난 지금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십여 년의 관찰 경험으로 미루어 늙은 떼까마귀들은 타향에서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은 이승이 타향이고 저승이 고향이다. 죽으면 다시 고향인 저승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하는(=본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이유다. 노아(老鴉)도 예외일 순 없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