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④…‘고야’와 ‘돈키호테’로 가득한 봄밤
스페인 ④…‘고야’와 ‘돈키호테’로 가득한 봄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4.2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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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5시간 이동하면서 영화 ‘고야의 유령’을 봤다.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고야의 작품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 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아 영화를 찾아 다시 봤다.

기괴한 고야의 판화 그림으로 시작한다. 판화집 부제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이다. 고야의 아름다운 모델이자 영원한 뮤즈 이네스는 부당한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소에 갇히게 된다.… 마야의 일대기와 시대적인 배경이 잘 나타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마드리드행 버스를 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프라도 미술관 입구에는 마야의 동상 외에 벨라스케스 동상도 보였다. 책에서 본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마주하니 기뻤다. 피카소를 비롯해 모네, 달리, 고야 등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림 중간에는 정면을 보고 있는 작고 귀여운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고, 붓과 팔레트를 들고 인상을 쓴 인물은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밖에 있어야 할 화가는 그림 안에 있고, 왕과 왕비를 공주 뒤에 있는 작은 거울 안에 비쳐 그려 넣었다. ‘시녀들’을 보면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듯 시선이 가운데로 집중하게 된다. 뒷문으로 나가는 신하는 작게 그려 원근법이 느껴졌다. 그는 초상화를 그릴 때 미화하기보다 최대한 그 사람의 성격과 개성까지 담아내려 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처음에는 스페인 작가의 작품만 전시했으나 이후 스페인과 관련된 작품과 외국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공간 문제로 프라도 미술관에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로 옮겨갔다. 프라도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고야의 작품으로, 전시된 작품 중에 질적, 양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옷을 입은 마하’, ‘카를로스 4세 일가’, ‘마녀의 집회’ 등 초기에서 말년에 이르는 100점이 넘는 유화와 수백 점의 소묘가 소장되어 있다. 마하 연작인 ’옷 벗은 마야‘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여 압력을 받았지만, 옷 입히기를 거절하고 3년 뒤 ’옷 입은 마야‘를 새로 그렸다. 마하는 이름이 아니라 ’세련되고 멋진 여성‘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고 한다.

마드리드의 중심이며 관광의 시초가 되는 지점인 솔 광장은 ’태양의 문’이란 뜻으로 스페인의 정점이 되는 곳이어서 스페인의 모든 도로가 이곳을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쇼핑의 중심지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마드리드의 상징인 마드로뇨 나무를 잡고 있는 불곰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주말에는 거리공연이 많은데 그날은 대형 판다가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했다.

‘마드리드’는 원래 ‘엄마가 달려간다’라는 뜻이란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린 소년이 엄마와 놀러 나왔는데 장난이 심해 멀어졌다. 어머니를 찾았을 때 갑자기 불곰이 나타났다. 소년은 달아났지만, 불곰이 그를 쫓고 있었다. 소년은 급히 나무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어머니의 소리가 들렸고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 아래서는 불곰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 장면을 보면 분명히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고 불곰은 엄마를 해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나무에서 “엄마,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스페인광장에는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세르반테스의 기념비가 있다. 그 앞에는 애마 로시난테를 올라탄 돈키호테, 노새를 탄 산초 판사의 동상이 있다. ‘돈키호테’는 당시 유행하는 기사도 이야기를 패러디해서 기사도의 인기와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의 근대 소설로서 스페인 문학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책이다. 우리의 시각 교정과 재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2002년 노벨 연구소에서는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책의 날인 4월 23일이면 돈키호테 읽기 대회가 열리고 마을마다 릴레이로 독회하기도 한다. 스페인 구석구석에 돈키호테의 명문구가 적혀 있다. 묘비명에서는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이 들어 죽었다.”라는 글을 볼 수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마야‘와 ’돈키호테‘에 빠지는 봄날의 이 밤이 즐겁다.

김윤경 여행큐레이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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