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예산’은 학생 스스로…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학생 예산’은 학생 스스로…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 정인준
  • 승인 2022.04.1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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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기획] ‘학생참여예산’ 학생자치 꽃 피운다
지난 2일 울산시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개최된 중·고등학교 학생자치회 학생참여예산제 실습교육에서 학생 대표들이 모둠활동으로 만든 사업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2일 울산시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개최된 중·고등학교 학생자치회 학생참여예산제 실습교육에서 학생 대표들이 모둠활동으로 만든 사업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이제는 학교에서 일반화된 ‘양심우산’이 학생들의 생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라도 갑작스런 비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학생들 역시 갑작스런 비에 당황스러운건 마찬가지다. 이 때 학교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학교에 다시 갖다주는 게 ‘양심우산’이다. 취지를 볼 때 학교에서 실시한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심우산’은 학생들이 만들었고, 이제는 안 하는 학교가 별로 없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학교에선 실내화도 빌려 신을 수 있다. 집에서 세탁 등으로 실내화를 잊고 가녀오지 못했을 때 빌려 신을 수 있다. 빌려 신을 뿐이여서 더럽게 사용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양심우산도 마찮가지다. 빌려간 후 갖다 가져오지 않고, 또 가져왔더라도 훼손돼 있으면 어쩌지? 하는 물음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지금의 학생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합의된 약속을 지키는 ‘학생자치’에 익숙하다. 양심우산이나 빌려 신는 실내화 등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불편했던 것을 스스로 개선한 사례다. ‘학생자치회’가 중심이돼 생각을 구체화 시켜 실행한다. 우산이나 실내화를 구입하는 비용은 ‘학생참여예산’으로 지원 받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민이 낸 세금을 ‘공공의 선(善)’에 부합하도록 사용해 자치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참여예산’을 통해 학생자치를 꽃 피우고 있는 것이다.

◇양심우산·빌려 신는 실내화·일반화 학생참여 예산 효과

지난해 옥서초등학교는 학생자치회 주관으로 ‘학생참여예산’을 받아 환경지킴이 프로젝트인 ‘옥서자원순환가게’를 운영했다. 자원순환가게는 학교와 가정에서 발생한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해, 울산 무거동에 위치한 자원순환가게인 ‘착해가지구’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학생자치회는 판매금을 학생들에게 작은상품으로 환원했다.

학생자치회는 자원순환가게 운영에 앞서 환경지킴이 활동을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했다. 또 각 교실을 방문해 자원순환의 필요성, 분리배출 방법 등을 안내하고 모든 학생들이 동참하기를 제안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1층 복도에 분리배출 용품을 든 학생의 긴 줄을 매일 아침 보게 됐다. 처음엔 플라스틱 한 종류만 분리배출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종류로 확대됐다. 학생자치회는 5회 쿠폰과 10회 쿠폰을 발행해 작은상품을 나눠 줬다.

문제점도 있었다. 1층 복도에 긴 줄이 생기자 이를 불편히 여겨 3층으로 가게를 옮겼다. 매일 하다보니 분리수거품이 많지 않아 1주일에 2번만 진행했다. 학생들은 ‘옥서자원순환가게’를 통해 환경을 지키는 소중함을 알게됐다.

옥서초엔 한 학부모의 말이 회자됐다. “우리 아이에게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혼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분리배출에 앞장섰다.

지난 16일 울산시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개최된 초등학교 학생자치회 대상 학생참여예산제 실습교육에서 학생들이 게시된 사업포스터에 점수 스티커를 주고 있다.
지난 16일 울산시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개최된 초등학교 학생자치회 대상 학생참여예산제 실습교육에서 학생들이 게시된 사업포스터에 점수 스티커를 주고 있다.

◇학생회장 선거공약·학생자치 아이디어 예산반영·집행… 미래 민주시민 가능성 무궁무진

시교육청 장소정(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예산은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시교육청이 학생참여예산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이 제도를 통해 학생들이 미래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가능성이 무궁무진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생참여예산’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이 직접 학교 예산편성과 운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학생회 제안 사업이나 학생회장 선거공약, 학생 자치 아이디어를 예산에 반영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게 배경이다.

시교육청은 우선 각 학교에 학생자치실 구축을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과 연계한 소통과 참여, 협업을 위한 공간이다. 이 곳에는 실질적 회의공간이 될 수 있도록 컴퓨터, 프린터 등을 구비해 줬다. 2019년에 10개 학교가 지난해엔 17개 학교로, 올해는 25학교에 구축됐다.

학생자치실이 단위학교를 위한 정책이라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생자치중점학교’를 선정해 ‘학생참여예산제’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자치회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학생자치회 역량 강화와 학생 주도적 학교행상 기획·운영으로 자율 자치능력 함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9년엔 40개교가 선정됐다. 이후 2029년엔 50개 학교로 늘어났다. 지난해 60개교(새싹학교 15개교 포함), 올해는 66개교로 확대된다. 새싹학교란 ‘학생참여예산제’ 교육을 위해 학생자치회로 찾아가 실습교육을 해주고, 학생자치지원단(교사) 강사를 파견한다.

특히 시교육청은 학생자치 예산을 학교 기본운영비로 의무 편성해 ‘학생참여예산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학생자치 예산은 학교당 100만원~220만원(2021년)에서 110만원~230만원으로 증액됐다.

◇초·중·고 대상 학생참여예산제 교육 실시… 학생들 생각은?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2일 외솔회의실에서 중·고등학교 학생자치회 대표와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학생참여예산제 실습교육을 실시하면서, 올해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오전에는 중학생, 오후에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생참여예산제의 필요성, 운영 방법 등 이론교육과 모둠별로 생각을 모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보는 협동학습의 형태로 진행했다.

학생들은 협업을 통해 △이 세상의 주인공은 너(희망 라디오) △사회를 지켜봐(진로탐색·예산 포장비, 간식비 정도) △Planet of Plant DAY(반려식물·예산 30만원) △벼락맞은 중간고사(내가 공부한 자료가 화폐가 되는 순간·예산 46만9천730원) 등 다양한 사업을 제안했다.

지난 16일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참여예산 실습교육이 실시됐다. 학생들은 △길고양이의 급식이군 △급식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우리 학교 캐릭터 공모전 △코로나 행복물병 등 10개 아이디어를 냈다.

장소정 장학사는 “학생들이 실행하는 참여예산을 보면 현재 학생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이는 시교육청의 교육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노옥희 교육감은 “민주적인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주체가 돼야 하며, 학생 때 경험한 자치활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고, 타인과 소통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이라며 “시교육청은 학교와 함께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예산 편성에서 집행, 평가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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