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비우스’-옳고 그름 따윈 집어 쳐, 아직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니까
영화 ‘모비우스’-옳고 그름 따윈 집어 쳐, 아직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니까
  • 이상길
  • 승인 2022.04.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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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비우스’의 한 장면.
영화 ‘모비우스’의 한 장면.

사실 선과 악, 즉 옳고 그름에 대해선 그것이 명확하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우선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종교나 학창시절 공부했던 도덕책, 혹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말이나 가르침 속에선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헌데 살아보면 그게 다라는 걸 누구든 쉽게 깨닫는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이나 도덕책에서 배웠던 옳고 그름은 어느새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선(善)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惡)으로 변질된다. 그것도 그럴 만 한 게 어른이 되어서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 죽을 만큼의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옳고 그름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다. 그땐 그저 내 편 들어주고 내 손 잡아주는 사람이 선이고 옳음이다. 설령 그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렇다. 분명 옳고 그름보다는 생존이 먼저가 아닐까. 신념에 죽고 사는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아니고. 게다가 옳고 그름은 인간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구분일 뿐, 대자연과 우주는 그것을 모른다. 그렇잖은가. 맹수가 사슴을 잔인하게 잡아먹는다고, 혹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를 끝장내버린다고 그게 악한 일인가.

허나 가장 심각한 건 그 옳음이란 게 개인의 행복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 그러니까 즐거움이나 쾌락이 본질인 행복은 옳음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왜냐. 옭음은 주로 이성적인데 정작 행복은 본능과 더 가깝기 때문. 그런데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사회가 강요하는 옳음을 위해 살진 않는다. 그래도 ‘살인’처럼 절대적인 악은 존재한다고요? 그럼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처럼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을 죽인 자들이 되레 위인으로 대접받는 건 왜죠? 내 진짜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요, 인간세상은 정말이지 엉망진창 모순 덩어리 같아요. 괜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일까.

해서 삐딱하게 봤을 때 인간세상에서 옳고 그름이란 소수의 가진 자들이 다수의 갖지 못한 자들에 의해 혹 발생할지 모를 혼돈을 잠재우기 위한 제도나 수단 같은 건 아닐는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히스 레저)도 연인 레이첼(메기 질렌할)의 죽음 이후 악당으로 전락한 하비 덴트(아론 에크 하트) 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혼돈의 장점이 뭔지 아나? 바로 공평함이야.” 하긴, 핵전쟁이 터져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은 죽음 앞에 비로소 같아진다. 그리고 <모비우스>에서 주인공 마이클 모비우스(자레드 레토) 박사도 갖지 못한 자에 속했다.

생화학자로 인공혈액을 개발해 수많은 생명들을 살려내면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자자한 모비우스 박사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건강한 몸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랬다. 어려서부터 혈액이 굳어지는 희귀혈액병을 앓았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처럼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해서 그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오랜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의 지원 하에 동료 마틴(아드리아 아르호나)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해 결국 치료제를 찾게 된다.

헌데 흡혈 박쥐의 피로 만들어진 치료제는 지팡이 없이 걷는 수준을 넘어 엄청난 괴력과 스피드를 그에게 줬는데 문제는 그 능력이 <어벤져스>의 스파이더맨처럼 계속 되진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뱀파이어처럼 계속 피를 마셔줘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생명까지 위험해졌다. 그렇게 그는 스파이더맨을 능가하는 큰 힘을 가졌지만 살기 위해 인간의 피가 계속 필요한 안티히어로(영웅 같지 않은 영웅)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나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개개인의 행복이 옳음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천성이 착해 세상을 구하는 옳은 일을 하고 싶어도 우리가 본능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듯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피가 계속 필요했던 모비우스는 그렇게 영화를 보는 내내 내게 이렇게 외쳐댔다. “옳고 그름 따윈 집어 쳐! 아직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적이니까.”

그랬거나 말거나 안티히어로도 히어로는 히어로. 50(이타심):50(이기심)의 마음 속 선과 악 비율 속에서 그는 1%의 선한 마음을 더 끌어올려 51%를 만든 뒤 세상까진 아니더라도 도시 정도는 구하는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다. 그가 결국 주인공이라서 그랬을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현실에서 우리도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했을 땐 왠지 뿌듯하잖아. 마치 어두운 방안에 촛불 하나를 켜듯이. 2022년 3월 30일 개봉. 러닝타임 104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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