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체제의 갈증, ‘달콤함’이라는 혁명전선에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체제의 갈증, ‘달콤함’이라는 혁명전선에서
  • 이상길
  • 승인 2022.03.2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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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한 장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북한 인민군 병사인 무광(연우진)의 삶은 나름대로 팍팍했었다. 혁명전사가 되기 위해 입대를 했지만 죽음을 앞둔 엄마가 “나도 며느리가 해주는 제사상 받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 한 동네 사는 지도원 동지의 딸과 덜컥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아내(장해민)는 남편인 무광이 하루빨리 공을 세워 간부가 되길 원했고, 공을 세우기 전까지는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마침내 혈서까지 써가며 아내와 약속을 한 무광. 그렇게 간부가 되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중, 진급에 유리한 사단장(조성하) 관사 취사병 자리가 났다는 이야기에 빛의 속도로 지원하게 된다. 결국 무광은 취사병으로 복무하게 되고, 관사에서 사단장의 아름다운 아내 수련(지안)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사단장은 주로 바깥 일이 많았던 만큼 사모님의 수발을 드는 게 무광의 주된 일이었던 것. 그런데 이 사모님, 조금 이상하다. 4살 차이밖에 안 난다며 단둘이 있을 땐 누나라 부르라고 하질 않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귀가 적힌 작은 팻말이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있으면 무조건 2층 침실로 올라오라고도 했다. 그래서 올라갔더니 야한 속옷 차림으로 무광에게 말을 붙이고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

바보가 아니었기에 무광도 그게 사모님의 유혹이라는 걸 일찍이 알았지만 일개 병사가 어찌 감히 사단장의 아내를 넘볼 수 있을까. 죽을라고. 해서 무광은 집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사모님과는 굵은 선을 그어버리는데 그 모습에 분노한 사모님은 취사병을 교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집에 두고 온 아내는 간부가 되길 원하고, 간부가 되려면 어떡해서든 취사병으로 남아야 했던 무광. 혼란스러웠던 그에게 용기를 준 건 다름 아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당의 교시였다. 사모님으로부터 무광을 자르고 다른 병사로 교체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관사 지도원 동지는 무광을 향해 이렇게 다그쳤더랬다. “사모님이 그러는데 자네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교시의 의미도 모르는 병사라는 거야. 혁명은 사람들에게 밥이나 대접하는 게 아닐세. 혁명은 그림을 그리거나 고상한 수를 놓는 게 아니야. 혁명엔 피를 흘리는 희생이 따라야 하는 거야.” 결국 다음 날 무광은 사모님을 누님이라 부르게 된다. 또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도 해주게 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교시를 실천하기 위해. 또 간부가 되어 혁명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과연 무광의 본심은 이게 전부였을까? 피식.

북한에서도 남녀 간의 비밀스런 연애는 분명 존재할 건데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쉽지가 않다. 통제와 감시가 워낙 심한 사회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라는 전체의 목표가 지나치게 크고 뚜렷하기 때문. 그 속에서 개개인의 행복은 쉽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허나 인간은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본능이 첫 번째이고, 이성은 두 번째”이기 때문. 해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회주의 혁명전사를 꿈꿨던 무광이 사단장 아내인 수련으로 인해 자본주의 멜로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주 인상 깊다. 그랬다. 사단장이 군 수뇌부 회담을 지휘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집을 비우는 동안 무광과 수련 둘만 있었던 관사에 사회주의는 없었다. 무광과 몸을 섞다 그만 실신해버린 수련이 깨어난 뒤 말한다. “이만하면 됐어. 여태까지 살아온 보람이 있었어.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사실 수련의 남편인 사단장은 훈련 도중 하반신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남자였다. 그렇다 해도 영화는 무광에 대한 수련의 마음을 ‘욕구’로만 묘사하진 않는다. 체제의 갈증 속에서 서로 격렬히 몸을 섞으며 진정한 혁명은 ‘달콤함’이라는 걸 알게 된 둘은 마침내 “내가 너를 더 사랑해”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국가 최고 지도자의 사진을 비롯해 사회주의 혁명전사를 강요하는 관사 안 각종 물건들을 서로 경쟁하듯 모조리 부숴 버린다. 체제에 대한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하긴, 이 지구상의 누군들 세계평화나 인류공영을 위해 살겠나. 다들 달콤한 행복을 위해 살지.

여주인공의 연기력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3류 에로 배우 같은 모습이 더 좋았다. 그게 오히려 북한이라는 3류 공간에 딱 어울렸던 것. 솔직히 북한 사모님을 서울 강남 사모님처럼 세련되게 묘사할 순 없잖아. 분명 감독의 의도적인 설정이 아니었을까. 결말도 구질구질하지 않고 애틋해서 좋았던 이 영화엔 꽤 커다란 반전까지 숨어 있다. 그건 흡사 스스로 이성이 첫 번째인 줄 알았건만 결국은 본능이 첫 번째였음을 깨닫게 되는 그런 느낌의 반전이랄까.

2022년 2월 23일 개봉. 러닝타임 146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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