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사회적 네트워크’
‘학교 내 사회적 네트워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24 2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 네트워크’라는 용어는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매우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용어로 쓰인다. 하지만 사회언어학에서 다루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개념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사회언어학’은 순수 언어학과는 달리 언어의 변화, 언어 기능의 특성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방언 연구이다. 방언 사용자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우선 면밀히 알아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방언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이른바 사회적 네트워크의 결속력이 강한 경우인지 그렇지 않고 사회적 네트워크의 결속력이 느슨하고 약한 경우인지에 따라 방언의 유지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네트워크 연구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을 조사하기 힘든 점과 그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으로 산정하면 어느 정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정보에 예민한 최근에는 더더욱 움츠러지는 연구 분야이다. 여기에서는 ‘학교 내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를 다루고자 한다.

시바타 다케시(柴田武)라고 하는 매우 유명한 일본인 사회언어학자가 있다. 일본의 방언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그는 ‘초등학생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실험적인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1960년에 학급의 중심인물인 리더를 통한 언어 전파력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선 학급의 리더 격 인물에게 가공의 단어를 알려주고 1주일 후에 그 확산 정도를 확인했다. 그 결과 리더 격인 중심인물이 인기가 있고 우호적이고 밝은 성격이며 학급활동이 활발한 경우에는 그 언어의 확산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필자는 2002년에 ‘학급 내 사회적 네트워크’를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의 조사는 도쿄에 있는 ‘동경 한국학교’의 언어적 측면을 염두에 둔 친구관계 네트워크 조사였지만 비교를 위해 한국 중학교와 일본 중학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사는 당시 남녀공학 중학교의 1∼3학년 한 학급씩을 지정하여 ‘친한 친구’ 2명씩을 실명으로 작성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학교 관계자에게 조사의 목적과 필요성을 전하고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위임하기로 했고, 학생들은 의외로 거부감 없이 작성해 주었다. 그 덕분에 한국 서울의 중학교 1학년 38(37)명, 2학년 40(32)명, 3학년 47(41)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마찬가지로 일본 도쿄의 중학생 1학년 35(34)명, 2학년 31(29)명, 38(38)명에 대한 조사도 같이 이루어졌다. (학급 인원수와 괄호 안의 숫자는 조사 응답자 인원수임).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우선 한국 중학교와 일본 중학교는 모두 ‘친한 친구’의 실명을 선으로 이어보았다. 그 결과 2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그룹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25명, 일본에서는 17명으로 이루어진 큰 그룹도 있어 통틀어 2~7개 그룹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차이점은 네트워크의 형태에 있었다.

한국 중학교에서 큰 그룹은 대개 직선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지목하고 그 친구도 또 다른 친구를 지목하여 긴 직선형으로 이어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중학교의 친구관계 네트워크는 대개 핵심인물이 있어 그 친구에 대한 지목이 많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타원형의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 학급의 핵심인물은 3~4명 정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는 20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현재 한국의 학급 내 친구관계 네트워크가 어떤 양상을 띨지는 알 수 없다. 일본과 같은 타원형 형태로 바뀌었을 수도 있고 여전히 한국만의 독특한 형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친구관계 네트워크는, 위에서 언급한 시바다 다케시의 연구에서도 있었듯이, 그런 형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직선형 친구관계 네트워크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본처럼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한 친구관계 네트워크는 아무래도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생산하기 쉽고 순수한 친구관계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수업에서 겨우 대면 수업으로의 전환을 힘들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 요즘 이러한 친구관계 네트워크가 염려스럽기도 하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