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교폭력 막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회복적 생활교육’
[기획] 학교폭력 막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회복적 생활교육’
  • 정인준
  • 승인 2022.03.2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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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징벌이 아닌 아이들 관계 회복 통한 상처 치유
-학폭위 징벌적 처분 끝나면 피해·가해자만 남아
-울산시교육청 ‘회복적 생활교육’ 2018년 도입해
-호계초 다양한 문제들 이해와 공감대 속에서 해결
공간(써클)에서 공동체의 의견이 논의 되고 있다. 써클을 통해 학생 다수가 말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화봉중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공간(써클)에서 공동체의 의견이 논의 되고 있다. 써클을 통해 학생 다수가 말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화봉중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1. 초등학교 5학년 아침독서수업을 하려할 때 일어난 일이다.

친구A : 교실에서 핸드폰 꺼라.

친구B : 핸드폰 껐다.

친구A : 그럼 핸드폰 한번 보자.

친규B: : 내 핸드폰인데 네가 왜 보니?

친구A : 껐는지 안 껐는지 한번 봐야지. B가 A의 머리를 6대 때렸다.

2. 초등5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는 ‘악플전쟁’(저자 이규희·그림 한수진)이 일부분이 ‘마녀사냥’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돼 있다. 전학 온 민서영이라는 친구가 금방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자 진미라라는 친구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민서영에 관한 악의적인 글을 올려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이들의 인터넷 문화와 친구들 간의 왕따 문제가 잘 드러나 있고 아이들 속의 갈등이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로 잘 묘사돼 있다.

새학기 들어 학교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선생님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으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1번 사례에서 독서수업에는 핸드폰을 꺼야 한다는 학생들 사이 약속이 있었다. 친구의 핸드폰이 꺼졌는지 확인 하려는 A와 이를 방어 하려는 B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누가 옳을까?
 

호계초는 지난해 ‘4계절을 품은 호계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것은 타인과의 이해관계를 증진시켜 평화로운 교실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호계초는 지난해 ‘4계절을 품은 호계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것은 타인과의 이해관계를 증진시켜 평화로운 교실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시교육청 2018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 도입

학교가 학교폭력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학교에 학교폭력위원회란 사법적 제도가 들어온 후,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폭위 처분은 징벌적이다. 징벌적 처분이 끝나면 피해자와 가해자만 남는다.

학교에서 학생 사이 학교폭력은 크든 작든 발생한다. 학교란 울타리 안에서 양분화된 극단적 처벌은 오히려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징벌적 처분이 끝나면 그 다음이란 대안이 없다. 이런 한계성과 막다른 골목에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더 나아가 치유의 교육을 하자는 게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울산시교육청은 2018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해 추진했다. 국내에선 10년전부터 시작됐지만 울산시교육청은 4년전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미국에서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제어(Howard Zehr)의 이론에서 출발했다. 하워드 제어는 “회복적 정의는 사법의 대안적 제도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회복적 사법은 가능한 한 잘못을 바로잡고 치유하기 위해 특정한 가해행위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 관여시켜, 피해와 요구, 그리고 의무를 함께 확인하고 다루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이 디자인됐고, 학교에 도입이 됐다.

◇호계초, 회복적 생활교육 적극 추진... 학생 사이 다툼 이해와 신뢰로 해결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하나라는 인식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사안이 발생한 상황을 중요하게 본다.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다수 등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당사자 간에 또는 공동체가 피해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게 목적이다.

울산지역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에 가장 모범적인 학교는 호계초등학교다. 호계초는 지난 2018년 울산형혁신학교인 서로나눔학교에 지정돼 ‘회복적 생활교육’을 적극 실천했다. 그 결과 학교의 다양한 문제들이 이해와 공감대 속에서 해결됐다.

이종표 교장은 “북구는 인구유입 등으로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여지가 학교로 확대되고 있지만, 호계초는 ‘회복적 생활교육’ 에너지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며 “학교폭력(사소한 다툼·놀림)이 없진 않지만 아이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비화하지 않고 학교 내에서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분쟁의 대안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제도적 안착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민주시민 역량이 길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이예정(왼쪽) 팀장과 최은주 장학사는 “학교에서 보편적인 회복적 생활교육이 실시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이혜정(왼쪽) 팀장과 최은주 장학사는 “학교에서 보편적인 회복적 생활교육이 실시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화의 기술과 공간 구축…시간의 흐름 속 경험 축적돼야

회복적 생활교육의 도구는 대화(시간)의 기술과 써클(공간)이다.

“너, 왜 그랬어?” “너, 뭘 잘못했는지 알아?”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 “그랬을 때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란 질문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되면 좋겠는가?’란 관계설정과 ‘(피해·관계) 회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란 자발적 책임으로 유도한다.

써클은 만남의 공간이다. 개인과 개인 또는 반 전체나 학년 전체도 될 수 있고, 전교생이 될 수 있다. 공간(써클)에서의 대화의 기술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학교와 학부모 등 전체의 관계에서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 관계는 오랜 시간이 경과한 ‘내공’이 쌓여야 한다.

◇아이들이 분노하지 않게 ‘회복적 생활교육’ 보편화 추진

회복적 생활교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최은주(학생생활·성인지) 장학사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에서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며 “그 결과 힘 있는 소수 학생들이 다수의 학생으로 포용돼, 학교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고 나아가 다툼을 예방하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교육청은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해 왔다. 회복적 생활교육 강사단을 초·중·고 교사로 구성해 학교로 찾아갔다. 또 관계회복 지구(학교폭력 사안이 많은 지자체 관내 학교)를 지정해 중점적인 컨설팅을 실시했다.

특히 시교육청은 회복적 생활교육의 한 프로그램인 ‘평화로운 학급공동체 운영’을 위해 200학급씩 운영해 왔다. 이들 학급은 컨설팅 등을 받아 회복적 생활교육에 기반한 학급을 운영했다.

이혜정(학생생활·성인지) 장학관은 “사법제도가 학교로 들어 왔지만 징벌이 아닌 회복으로 가야 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미래를 위해서, 아이들이 분노하지 않게, 학교에서 보편적인 회복적 생활교육이 확산될 수 있도록 교육청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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