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배트맨’-탐정 배트맨, 어둠에 찌들다
영화 ‘더 배트맨’-탐정 배트맨, 어둠에 찌들다
  • 이상길
  • 승인 2022.03.1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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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배트맨'의 한 장면.

이젠 영화나 소설에서나 존재하는 직업이지만 탐정이 하는 일이 그렇다. 그건 결국 어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탐정이 불륜을 밝히거나 첫사랑을 찾아주는 일 같은 걸 하진 않잖아. 무슨 흥신소도 아니고. 탐정은 주로 범인을 잡는데 범인과 그가 저지른 범죄는 분명 ‘어둠’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으로 인해 고통과 상처가 존재하는 공간. 그렇게 탐정은 어둠을 들여다본다. 현실에서 비슷한 직업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경찰 등이 있다. 직업명에 ‘사’자가 들어가는 소위 특급 전문직이거나 공권력을 대표하는 권력기관이지만 하는 일만 따지고 봤을 땐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니다. 왜? 탐정처럼 어둠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니까. 그러다보면 스스로의 마음도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뭐 그렇다 해도 어둠이 전혀 매력이 없는 존재는 아니다. 아니 빛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빛을 행복으로, 어둠을 고통으로 봤을 때 현실에서의 삶은 어둠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그렇게 대다수 인생은 평생 돈에 쫓기며 살다 보니 어둡고, 꿈이라고 있는 건 쉽게 이뤄지지 않아서 어둡다.

어디 그뿐인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수시로 치솟는 욕망이나 욕심은 주체할 수 없어 어둡고, 그나마 보편적인 행복의 사랑은 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고 또 영원하지 않아 결국은 어둡다. 아무튼 인생에서 즐겁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은 전부 어둠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그래도 짜증내지 말고 그냥 이해하시길. 어차피 이 우주도 90%가 어둠이고, 빛은 고작 10% 정도라고 하니까.

마블이 <어벤져스>시리즈로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DC만의 경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러한 ‘어둠’의 철학이다. 기분이 우울할 땐 우울한 영화나 음악이 더 위로가 되듯이 DC 특유의 다크함은 분명 밝은 마블보다는 현실적으로는 더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런 DC표 다크 히어로의 중심에는 늘 ‘배트맨’이 있다. 참, DC와 마블은 슈퍼맨과 배트맨,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등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을 창조해낸 미국의 양대 코믹스(만화잡지)를 말한다. 영화기술의 발달로 근자에 와서 제대로 된 실사 영화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다시 배트맨 이야기로 돌아와 브루스 웨인, 즉 배트맨은 탄생배경부터 행색까지 가히 어둠의 끝판왕이라 불릴만하다. 고담시라는 부패와 범죄로 얼룩진 도시에서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 부모님이 강도의 총에 의해 길거리에서 살해당하면서 그의 인생은 통째로 어둠을 덮어쓰게 된다. 부패와 범죄를 증오하게 된 브루스 웨인은 범죄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라 결심하게 되고, 어두운 동굴 속의 검은 박쥐처럼 온통 검정색 슈트를 입고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리부트된 <더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이 배트맨이 된 지 2년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2년차라는 설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이제 막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 소위 청년 배트맨으로서 브루스 웨인의 가슴 속엔 지금 범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 심지어 그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도 그들에게 “나는 복수다”는 말을 한다. 복수심도 분명 어둠의 영역이고, 그렇게 2년차의 배트맨은 아직은 탐정으로서 어둠에 갇혀 그저 어둠에 찌들어 살고 있더라. 헌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누구에게나 인생이라는 건, 남들 앞에서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진짜는 비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 같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도 빨갛게 물든 복수심과 욕망이 꿈틀대는 그런 빨강과 검정이 뒤섞여 있는 밤 말이다. 해서 난 아이언맨은 좋아하지만 배트맨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랬거나 말거나 어둠에 갇힌 나의 2년차 배트맨도 결국은 ‘빛’을 찾아 가더라. 리들러(폴 다노)라는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계략으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데 칠흑 같은 그 밤에 하얀색 빛을 내뿜는 조명탄을 들고 물에 빠진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구하는 장면은 더 이상 어둠에 찌들어 사는 탐정 배트맨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배트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이 대사. “그 순간, 난 사람들에게 복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야 배트맨이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구나. 복수의 화신에서 벗어나 드디어 ‘어둠의 기사(Dark Knight)’가 되려는 구나. 하긴. 우리도 밤하늘을 바라볼 땐 어둠이 아닌 빛을 찾으니까. 2022년 3월 1일 개봉. 러닝타임 176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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