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보아야 예쁘다
예쁘게 보아야 예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1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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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한 학년이 12반이고 반에는 30명씩 있는 큰 학교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마주하니 누가 누군지 하나도 구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수업도 안 했는데 얼굴이 눈에 익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있는 교실에서 첫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몇 번 큰소리로 대답하더니 그만 엎드려 버렸다. 옆으로 가서 어디 아픈지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사실 무척 건강해 보이는 아이였다. 몇 번 엎드리길래 일어나라고 했더니 그때마다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사실 첫날은 수업의 방향과 평가에 대한 안내가 좀 많아 지루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두 번째 시간이었다. 첫날과는 달리 이날은 잠이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뒷자리 친구와 자꾸만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어서 몇 번 조용히 하라고 일러주었다. 이 순간이 중요했다. 몇 번 말해도 잘 안 들으니 짜증이 날 수도 있었고, 사실 짜증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다 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서 ‘삶 나누기’를 했다. 삶 나누기는 일종의 근황 토크 같은 것으로, 최근 자신이 경험한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활동이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친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가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간 비웃는 듯한 행동을 했다. 잠시 멈추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비웃으면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한 뒤부터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름 조심하는 모습을 보니 슬며시 올라올 것 같던 짜증이 사라지고 오히려 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덩치는 필자보다도 큰 것 같지만.

‘삶 나누기’를 마치고 수업 규칙을 정하려고 『중요한 사실』이라는 그림책을 같이 읽었다. 풀, 숟가락, 바람, 나와 같은 여러 일상적 개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도덕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도덕성을 기르는 것, 유익한 시간이라는 것, 즐겁다는 것, 예절을 기르는 것 등 다양한 생각을 발표했다. 아이들의 발언을 칠판에 기록하고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도덕성을 기른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

아이들이 저마다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이 그 아이도 갑자기 손을 들었다. 발언권을 주니 도덕성을 기른다는 것은 “싸가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듯한 의견이라고 칭찬해준 다음 어떤 행동이 ‘싸가지’가 있는 행동인지 물어보았다. 한참 동안 싸가지가 있는 행동과 싸가지가 없는 행동의 기준에 대해 탐구했다. 그동안 그 아이는 제법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싸가지’도 기르고 도덕성도 기르고 유익하고 즐거운 도덕 수업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업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와 ‘바른 자세로 참여해야 한다’는 두 가지 잠정적 규칙에 합의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지켜야 할 규칙도 함께 논의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아이도 공동체 속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의 톡톡 튀는 모습이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레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물론 다음 수업 시간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 아이가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으니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오래 보면 예쁘기도 하겠지만 역시 예쁘게 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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