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은 나약함을 바라보는 거울
긴장감은 나약함을 바라보는 거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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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세 번 먹는 식사라도, 매 끼니마다 메뉴는 무엇으로 정할지 신경이 쓰인다. 포럼이나 세미나도 그렇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엔 모든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도 사람들 앞에 서면 언제나 긴장이 된다. 강의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처음 강의하는 것도 아닌데, 그 긴장감과 떨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데 긴장감 없이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꼭 실수를 저지른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그 일을 완전히 망쳐 버릴 때도 있다. 어쩌면 긴장감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더 많이 준비했기에,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에,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도 예사롭지 않을 수 있다.

TV 토론 프로그램이나 청문회, 아니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들을 보면서 때로는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은 이미 정해놓고, 질문에 답하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이 옳음을 드러내려고 몰아간다. 나아가 상대방 자체를 판단하고 규정지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을 비판하기까지 한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하는 질문을 살펴봐도 이런 편향은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늘 자신의 나약함, 부족한 이해와 판단을 직시해야 한다.

언젠가 서울 갈 때의 일이었다. 터널에 진입했는데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조등도 켜졌고 터널 안 전등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운 거지?” 알고 보니 강한 햇볕에 썼던 선글라스 때문이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만 벗으면 될 일을 기계의 오류나 터널의 문제라고 남 탓만 한 것이다. 웃픈 이야기지만,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판단도 비슷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의 잘못보다는 세상과 주변의 문제점을 먼저 생각한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는다거나 내 생각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실망하고 짜증을 부린다. 그러나 실제는 욕심과 욕망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변하려면 자신이 제대로 보고 있는지, 자신의 색안경이 무슨 색깔인지 바로 보는 것이 먼저다.

연초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한다. 어떤 일은 더욱 집중하고, 어떤 일은 조금 내려놓기로 다짐도 한다. 그렇게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본다. 그런데 나는 자꾸 무엇을 하기만 원하는 것 같다. 일하기를, 놀기를, 사랑하기를,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기 원하는 만큼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요구한다. 만일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를 괴롭힌다. “나도 이만큼 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방탕과 만취, 일상의 근심도 날마다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실수하는 것 또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 습관 때문에 누군가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그 상처와 아픔조차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한 번의 실수에도 고민하고 반성한다면, 긴장하며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또한, 그 긴장감은 나의 나약함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고 반성하며 완벽해지려고 하지만, 결과를 돌아보면 언제나 부족함이 보인다.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삶은 어차피 죽음의 중력에 종속돼 있다. 누구나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불행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다들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나라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젠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바라보자. 그러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다그치지 않고 내가 먼저 할 수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 긴장감을 즐기고 싶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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