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억 명의 조별과제
78억 명의 조별과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2.2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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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들이 내주시는 숙제는 모두 개인이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개별 과목들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과제의 형식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조별과제’ 형태로 바뀌었다. 조별과제의 성공적 이행은 구성원들의 원활한 협력이 필수조건이지만, 안타깝게도 구성원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무임승차’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나머지 구성원들이 몇 배씩 노력하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영국 리딩대학의 Ed Hawkins 교수가 제시한, 172개의 푸른색과 붉은색 계열 막대로 구성된 그림으로, 각 막대는 1850년∼2021년의 평균온도와 각 해 평균온도의 차이를 나타낸 그림이다. 마치 바코드를 닮은 이 그림은 172년 동안의 온도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푸른색 계열 막대들의 색들이 옅어지고, 1980년대 이후 막대들의 색들이 붉은색 계열로만 구성되어 지구 평균기온의 증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현재로 올수록 색이 더 어둡게 변화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진행이 명백하고,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다.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온실효과’, ‘지구온난화’라는 용어가 폭넓게 사용되었다. 지구의 대기에 태양에너지가 머물면서 지구의 온도가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보다 높다는 ‘온실효과’의 개념은 1822년 프랑스 물리학자 요셉 푸리에가 발견했고, 아일랜드의 존 틴들은 이산화탄소 등의 가스가 열을 가두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적 증거를 1856년에 제시했다. 화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스반테 아레니우스(1903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짙어지면 지구 온도가 5~6℃ 높아지게 된다는 논문을 1896년에 발표햇다. 이후 1970년대부터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전 지구적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계속 내놓았다.

기후변화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 노력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1997년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어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온실가스의 총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고, 기온상승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발생빈도와 강도는 더욱 강화되었고, 그 피해는 더욱 커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다양한 대응 노력들이 30년 이상 진행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 대응은 일부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토 의정서는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 이외 국가들의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의 폭발적 증가로 총배출량은 증가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기후변화는 더욱 빨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5년에 체결된 파리협약에서는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출된 여러 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제한해야 하는 온도상승 폭을 만족시키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전의 기고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매일 과거의 대가를 치르며 오늘을 살아간다. 산업혁명 때보다 기온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려면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빠른 속도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은 특정 집단이나 국가만이 아닌 전 인류에게 요구되고 있다.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개인이 하는 ‘개별과제’가 아니라 78억 명이 함께하는 ‘조별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조별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 난이도의 차이는 용인할 수 있으나 ‘무임승차’는 허락되지 않는다. 78억 명이 수행하는 이 조별과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단순히 낙제 점수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생존의 위협까지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영일 울산연구원 시민행복연구실, 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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