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宣傳)
선전(宣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2.2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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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 124일째. 울산 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가 단체협상을 위해 시교육청 본관 입구에서 천막을 펼친 기간이다. 농성 날짜는 하루하루 숫자가 올라가고 있다.

울산의 천막농성은 비정규직노조연대 중 학비노조가 단독으로 하고 있다. 처음 농성에 들어갔을 때는 교육공무직노조도 함께 천막을 쳤으나 그 뒤 천막을 걷었고, 학비노조는 천막농성을 계속 이어 갔다. 학비노조의 천막은 그 행위만으로 ‘선전(宣傳)’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선전(Propaganda)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조직적 노력’이다. 여기에는 의도적으로 일방적 주장을 전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내로남불’, ‘아전인수’란 말은 선전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파생한 단어다. 선전은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말하지만, 수단에 있어 정보를 왜곡하고 상대의 감정에 상처를 준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학비노조가 예년과 달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울산 시내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학비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 들어가면서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겨냥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했다. 시교육청과의 교섭을 울산지역 전체 문제로 확산시킨 것이다. 시청 등 주요 관공서와 광장에서 시위하면서 울산지역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플래카드는 특히 동구지역에 많이 내걸었다.

학비노조가 동구 지역을 겨눈 것은 사용자인 노옥희 교육감을 저격한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교육감의 동구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공적 영역에서 진행해야 할 협상에서 사적 영역까지 침범해 선(線)을 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감이 얼마나 잘못했기에 사적 영역인 자택까지 찾아갔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플래카드에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교육관료들의 거짓말과 속임수 그만!, 노 교육감이 책임 있게 나서라” “전국 최저임금 수준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학비노조는 그동안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지역 학교노동자들의 임금이 전국 최하위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또 방학 중 비근무자들은 무노동 기간에는 임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있다며 생계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돌봄전담사의 임금 1유형 전환, 초등스포츠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이런 사항들은 노 교육감이 해주기로 약속했다거나 노 교육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흘리기도 한다.

이러한 선전은 대부분 과장됐다. 학비노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연 울산지역 학교노동자 임금 수준이 전국 최하위인지. 그랬더니 “노동정책이 뒤로 후퇴하기 때문에 전국 최하위를 지향하고 있다”는 이상한 답변을 내놓았다. 최하위를 주장하려면 전체 50여 개 직종의 임금 수준과 처우도 포함해 비교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선전해야 설득력이 있을 법한데도 그랬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들의 처우가 전국 최상위권에 버금간다며 직종별 비교 데이터를 실제로 보여준다.

어떤 조건이더라도 학비노조는 을(乙)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일은 많이 하는데 임금과 처우는 미흡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또 노동운동가 출신인 노옥희 교육감이 당선된 후 기대한 만큼 처우나 임금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실망이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선을 넘는다면 곤란하다.

학비노조가 친 천막을 보는 심정이 답답하다. 천막이 여러 사안이 중첩된 ‘괴물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학비노조의 선전전은 올해 교육감 선거와 맞물려 외부로 향하고 있다. 선전전의 상징인 천막을 걷어내고 그 에너지를 사용자 설득에 사용하면 어떻겠는가.

정인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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