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의 ‘역사’다
방어진의 ‘역사’다
  • 권승혁 기자
  • 승인 2009.06.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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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7월이면 울산 동구를 찾았다.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비젠(備前)시와 통합된 히나세정 어촌마을 주민들의 얘기다. ‘역사적인 인연’이었다.

울산 동구 방어진은 일제의 어업전진기지로 활용된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다. 1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방어동을 중심으로 ‘일본인 이주어촌’의 흔적이 남아있다. 빛바랜 짧은 처마. 낡은 목재 난간. 견고한 석축에 올려진 2층 가옥 등…. 방어동을 걷다보면 번화가를 중심으로 일본식 가옥을 쉽게 만난다.

방어진항은 한 때 전국 어획고의 10%를 차지할 만큼 천혜의 어장을 자랑했다. 일제는 오카야마현을 시작으로 각지의 어민을 방어진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일본 어부들은 어자원 고갈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방어진항은 이들에게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이들의 2세대, 3세대 후손들이 방어진에서 태어나 방어진 초등학교의 전신인 방어진 심상소학교에 다녔고 해방과 동시에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면서 히나세정 주민들이 방어진을 방문하고 싶어했다. 지난 1993년 히나세정 지역 일생중학교와 동구 일산중학교가 첫 교류를 시작했고, 2003년 히나세정과 동구청 사이에 문화교류협정식을 가진 뒤 지금까지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7월 독도와 관련한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로 동구청이 공식적인 교류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하기도 했으나 전국적인 분위기에 편승한 제스쳐였을뿐 실제 교류 중단을 비젠시에 통보하진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10일 동구의회 권명호 의원은 “방어진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 지자체와 시민들의 무관심속에 점점 소실되고 있다”며 “반일감정때문에 무조건 덮어버리고 지울 것이 아니라 방어진의 과거를 찾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방어진내 이주어촌에 대한 복원 방안 등을 진작 마련했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 방어진과 같은 운명에 처했던 포항 구룡포는 어떨까?

포항시는 최근 일제강점기에 구룡포에 정착한 일본 어부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구룡포에 살았다’를 펴냈다. 포항시장은 ‘책을 펴내면서’를 통해 “‘구룡포에 살았다’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해서 재발견의 토대를 찾겠다”란 의지도 밝혔다.

동구는 물론 울산 전역에서 벌어지는 재개발과 재건축 등 개발붐으로 인해 무작정 방어진내 일본가옥들을 보존하자는 말을 섣불리 꺼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방관만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비단 우리만의 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방어진 속 일본인 이주어촌.’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를 떠나 ‘방어진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권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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